[옴부즈맨 칼럼] 분석에 치중한 아프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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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11 테러 이후 지면을 채워온 주요 기사는 단연 미국의 보복전쟁에 관한 것들이었다.

12월 8일자만 해도 1면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탈레반 최후 거점인 칸다하르의 함락에도 불구하고 "이제 대테러 전쟁의 초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색출로 좁혀졌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8면에는 '테러에서 탈레반 항복까지…'와 '전쟁일지' 등이 실렸다.

이 외에도 4일자 11면의 '확전…불붙는 찬반 논쟁'에는 대다수 미국인이 확전을 지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시론 '테러전쟁과 정의'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사목표와 민간목표를 철저히 구분하는 차별성의 원칙과 '원인보다 결과적 피해가 작은 비례성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반전'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자료를 e-메일로 보내왔다. 거기엔 전쟁의 참화 속에 눈물짓는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슬픔과 고통이 담겨 있었다. 전쟁터의 군인의 눈빛, 수용소에 갇힌 포로의 죽음, 길에 널린 시체들도 있었다.

9.11 테러 이후 이제는 일상처럼 돼버린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식. 하지만 거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3분 가량 되는 동영상 자료가 느끼게 해주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우는 젖먹이 아이의 얼굴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어"라고.

페미니스트 저널 2001년 겨울호에서 조순경(이화여대 여성학)교수는 "모든 전쟁은 (남성) 군인들에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며, 그 폭력의 대상은 여성.장애인.어린이, 그리고 사회적 약자"라고 했다.

또 "미국식 테러와의 전쟁은 전세계를 전쟁준비 상황에 돌입하게 하고,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정상적 신체와 정신을 가진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군인으로 만들었으며, 미국식의 보복전쟁이 허용될 때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평화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전세계는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가 된다"며 우리가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다.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6일 세계 각국 정부들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국내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반전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 테러전쟁 관련 보도들은 주로 전쟁의 현황, 세계 정치판도의 흐름, 그리고 주요 국가의 반응 등 정세분석에만 치중하고 있다.

빈 라덴이 9.11테러를 주도했다는 것이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은신처라 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사는 땅에 대규모 공습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 세상에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화.경제적 여파들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전쟁 그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인권침해의 현장인지에 대해 알리는 것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이 전쟁에 관한 기사가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경고와 '전쟁금지'의 방향성까지 심도 있게 다루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저 먼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전쟁의 다른 끝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이숙경 웹진 줌마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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