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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 일단은 유예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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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경규 과장님을 비롯한 쌀 협상팀의 노력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보기에 이번 쌀 재협상의 결과는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니 농약을 먹고 죽든, 목을 매고 죽든 편한 방법은 당신들이 택하시오 하는 격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협상 전문가들의 노력은 가상하나 결과는 실망입니다.

과장님, 지금 농업.농촌의 현실은 태풍이 내일 올지 모레 올지 모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 비켜갈 수도 없이 태풍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쌀을 추가로 대폭 개방한다거나 관세를 매겨 완전개방한다는 것은 농업의 파산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장님도 잘 알고 있다시피 WTO/DDA 농업협상이 현재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협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제갈공명이 살아온다고 해도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에 따른 실익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과장님, 올해 안으로 쌀 재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관세화된다고 9월까지는 어떻게든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시더니 아직도 협상 중이니 도대체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WTO 협상도 해를 넘겨 2005년 말에나 타결될 수 있을지, 말지 하는 판에 왜 쌀 수출국의 무리한 입장에 우리만 끌려다녀야 하나요? 어차피 협상이야 하면서 늘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정부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일단 쌀 관세화 유예를 계속하고 그 기간 중 농업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통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쌀의 개방 여부는 WTO/DDA 농업협상의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한번 관세화를 선언하면 결코 관세화 유예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쌀 협상을 둘러싼 농업의 위기를 국민적 의사 결집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의 잘못된 농정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위험을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했던 옛날의 방식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소농.협업농.친환경 농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해 농산물의 품질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넓은 땅을 농약 없이 농사 지을 수는 없습니다.

과장님,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9%(쌀 제외 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0개국 중 27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여기에 쌀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을 위한 생산기반인 농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농업의 생산기반이 줄어들기 전에 적정한 식량자급 목표수준을 설정해 농업을 살려야 합니다.

과장님, 마지막으로 관세화냐 관세화 유예냐의 선택은 국민이 해야 합니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국민의 의견수렴 절차 없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착각입니다. 국민투표라도 해서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협상팀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강민수 전국농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