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어디로 가야 하나] 2. NGO와 NP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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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2월 19일 오후 6시 삼성경제연구소 대회의실. 시민사회계의 중견 학자.운동가 등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제3회 시민사회포럼이 열렸다. 발제자는 차명제 박사(전 배달환경연구소장), 주제는 '2000 한국 시민운동의 평가와 과제'.

지난해 한해 동안의 시민운동을 회고하고 새해의 전망, 과제 등을 논의해 보자는 자리였다. 발제자의 발표가 끝나고 자유토론이 시작됐을 때 양용희(전 글로벌케어 사무총장)씨가 먼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1년간의 활동평가를 지나치게 운동단체들로만 국한시켰다는 것.

양씨는 "시민운동을 자원봉사 등 시민들이 벌이는 일체의 사회참여 활동으로 본다면 지난 1년간 한국의 시민사회 운동은 훨씬 풍성하게 평가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이 펼치는 사회참여 활동, 그들이 구성하는 단체들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를 놓고 한국의 시민사회계가 다소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양씨의 주장대로 시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시민단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시민운동성 단체'로만 개념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선 '시민운동성'단체들과 '시민봉사성'단체들은 지나칠 정도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외국에선 똑같은 '시민들의 단체'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선 전혀 별개의 두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우연히도 같은 시기에 출범한 비정부기구(NGO)학회와 비영리단체(NPO)학회는 이를 극명하게 상징한다. 당시 NGO학회는 시민들의 사회비판적 활동을, NPO학회는 사회봉사적 활동들을 주로 논의하는 별개의 조직으로 등장했다.

시민단체의 개념을 둘러싼 이같은 양분 현상은 사실 인위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90년대 들어 갑자기 시민운동성 단체들이 활성화되자 언론.학계.시민사회계는 그들을 일제히 '시민단체'라고, 또 영어로는 'NGO'라 부르기 시작했다. 99년 초 당시 시민운동 단체들이 소위 개혁시대의 '파워 엘리트'로 등장하자 각 언론들이 'NGO'고정면을 만든 것이 용어 사용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나 1949년 유엔이 처음 사용한 NGO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일체의 민간 시민단체를 포괄하는 개념일 뿐이다. 90년대 들어 유엔이 리우 환경회의를 시작으로, 사회개발.여성.인권 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일련의 세계대회를 열고 정부회의와 별도로 'NGO포럼'의 공간을 마련하자 그 용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세계 NGO포럼 참가단체들엔 시민운동성 단체들뿐 아니라 각 나라의 복지.의료.여성.인권 등 각 관련분야 서비스 단체들이 망라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시민사회가 풍성해 지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NGO.NPO가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필요가 있다. 용어야 둘로 나누어 쓸 수도 있지만 적어도 국민 머리 속엔 NGO든 NPO든 시민단체든, 누구나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세계'로 인식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둘로 나뉜 용어가 문제라면 지금부터 아예 '시민사회단체'(CSO)라는 통합용어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창호 전문위원(본사 시민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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