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트] 감정싸움된 개고기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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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88올림픽에 이어 내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또 다시 '개고기' 논쟁이 한국을 들쑤시고 있다. '개고기 먹는 한국인은 야만인'이라는 비난이 미국과 유럽의 TV방송 등에서 일고 있기 때문이다.

88올림픽 땐 정통성이 약한 정권이 외압에 굴복하는 바람에, 보신탕집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간판도 '보신탕'에서 '영양탕''사철탕' 등으로 개명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한국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개고기 먹는 게 어때서□ 그건 문화적 차이야"라며 훨씬 당당해졌다. 물론 "도축 과정을 위생적으로 고치겠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개고기 논쟁에 본격 불을 붙인 건 지난 4일 MBC 라디오(FM 95.9 ㎒, 오전 6~8시)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B)와의 전화인터뷰다.

BB가 인터뷰 도중 "거짓말하는 한국인과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이에 발끈한 네티즌들이 항의 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BB는 "한국인들로부터 공격적인 e-메일을 1천여통 받았다"며 더욱 호전적으로 나왔다.

'…시선집중'이 BB와 처음 인터뷰한 건 지난달 26일(방송은 28일). 홍동식 PD에 따르면 프랑스 TV에서 개고기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걸 알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견해차이를 좁혀보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48분간(통역시간 포함) 통화하는 동안 그녀는 질문과는 상관없이 줄곧 "개고기 먹는 사람은 야만인"이라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래서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고 두번째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는 질문지는 읽지도 않은 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홍PD는 "BB가 그토록 비논리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며 "인터뷰 대상으로 택한 우리가 순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전체를 야만인으로 몰았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흥분하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BB가 우리의 이런 반응을 다시 자신의 활동에 역이용하고 있는 만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당당한 만큼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응하자는 것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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