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제조업은 살아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떻게 사람이 식량 대신 기계를 먹고 살 수 있느냐□" "저 기계가 바로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실업자를 양산한다." 산업혁명 때 나왔던 지식인과 근로자들의 반발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한 기술혁명의 흐름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 산업혁명은 농업사회를 공업중심으로 급속히 변화시켰고, 식량문제는 오히려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해결됐다. 노동력의 가치도 기계의 발명으로 크게 상승했다.

***벤처.첨단산업 편중 지원

이때부터 제조업은 국가 경제력의 상징으로 부상하게 됐다. 대단위 공장에서 수만명의 종업원이 기술과 자본을 결합해 세계 일류제품을 만드는 모습은 여전히 한 나라 경제의 얼굴이다. 특히 우리처럼 미숙련 노동력이 많은 경제에서 어떻게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조업은 최근 굴뚝산업이라는 오명 속에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제조업의 특성 중 어느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잦은 노사분규와 높은 임금수준으로 경쟁은 더욱 힘들어졌고,정부규제와 환경문제 등으로 투자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 이것 뿐인가.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보기술(IT)산업에만 자원이 몰리고, 벤처와 첨단산업에 편중된 정책지원으로 제조업의 소외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하고 있다. 고급인력은 너 나 없이 제조업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제조업을 고수하는 답답한 기업인들은 중국에 한번 가보라는 냉소적 권고가 유행한다.

이런 와중에 다만 몇 개라도 세계적 제조업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올해 현대자동차는 창사 이래 가장 큰 흑자를 내고 있으며,삼성전자와 SDI, 포항제철 등도 아직도 시류를 역행하며(?) 제조업으로 우리 경제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살펴보면 제조업 전체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안정된 여건에서 확고한 경쟁우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경쟁력의 밑바탕이 되고 있지만, 과연 그 격차가 얼마나 큰 것일까. 역설적으로 그 격차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다른 여건들이 너무나 취약해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우선 생산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우리가 5.17달러로 중국의 0.47달러보다 11배나 높다. 제조업부문의 임금상승률도 최근 3년간 우리가 대만이나 일본, 미국보다 세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는 것도 아니다. 제조업의 파업은 97년 이후 해마다 증가해 노동자수에 비례한 노사분규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됐다. 또한 5백명 이상 대기업의 월평균 급여는 중소기업의 두배가 넘지만, 파업은 주로 대기업 노조에 의해 주도돼 왔다. 정부의 투자규제는 심하고 금융여건, 여타의 투자환경, 제조업에 대한 사회정서 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을 맴돌고 있다.

***임금.투자환경 개선 시급

이런 여건에서 세계적인 제조업이 아직도 살아 숨쉬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니 어찌 대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생명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최근의 흑자는 놀랍게도 높은 환율과 금융비용의 절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생산성의 향상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요인들이 모두 유동적이고 불안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과 이자율은 불확실하고, 정규직을 과감히 줄여온 구조조정도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노사불안과 임금인상의 욕구가 변화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굴뚝산업이라고 버려야만 하는가. 벤처와 전문 서비스업종으로 그 많은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노사관계와 임금체계, 투자환경의 개선을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 정부규제도 완화하고 제조업과 IT의 융합, 기술혁신도 추진해야 한다.

아니면 기업이 국경을 넘어 굴뚝을 옮기게 될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차이나 충격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제조업이 살아나려면 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 동서문제위 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