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혁명 '줄기세포 치료'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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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논란 거리인 인간 배아(胚芽)복제가 미국 생명공학회사인 ACT사에 의해 일단 성공(본자 11월 27일 1, 3면)하면서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줄기세포란 간이나 폐, 심장 등 구체적 장기(臟器)를 형성하기 이전에 분화를 멈춘 배아 단계 세포.

간(幹)세포라고도 불린다. 줄기세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시험관에 담긴 줄기세포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특정 세포를 골라내 치료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미래의 의학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살펴본다.

2010년 서울의 한 병원.

파킨슨병으로 손떨림이 심한 환자 K씨에게 줄기세포 치료 처방이 내려졌다. 약물이나 수술 등으로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는 단말기 인터넷을 통해 국립 냉동 수정란 은행 서버에 접속해 이곳에 보관 중인 10만여개의 냉동 수정란 중 K씨와 유전형이 일치하는 것을 찾아냈다. 이들은 모두 불임 부부들이 시험관 아기를 위해 잉여 생산했다가 5년후 폐기 처분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영하 1백96도의 질소탱크 속에서 직경 1㎜ 안팎의 냉동 수정란을 집어내 줄기세포 클리닉으로 보냈다.

시험관 속에서 특수 약물처리를 통해 배양된 줄기세포에서 K씨에게 필요한 도파민 분비 뇌세포만 선택적으로 골라 K씨의 뇌 속에 주입했다. K씨는 완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줄기세포 치료가 혁명적인 차세대 치료법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건강한 세포를 모든 종류 별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치료는 병든 세포는 그대로 둔 채 수술이나 약물로 교정해주는 정도에 그쳤으나 줄기세포가 실제 활용되기 시작하면 세포 자체를 바꿔주는 완치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당뇨 환자에겐 췌장 세포를, 동맥 경화 환자에겐 혈관 상피세포를, 간경변 환자에겐 간장세포를 주입시켜주는 것이다.

항암제로 골수가 파괴된 환자에겐 조혈세포를 무한정 주입할 수 있어 암 치료의 성공률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지난해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팀이 줄기세포에서 심장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뇌신경세포.췌장세포.조혈세포.근육세포 등 5~6종의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

인간의 몸은 1백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지만 종류는 고작 2백10여종.

현재와 같은 기술발전 속도라면 앞으로 10년후 위장과 간, 폐 등 대부분의 줄기세포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리아병원 외에 차병원과 미즈메디병원, 가톨릭의대 등이 줄기세포 연구에서 국제적 수준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치료가 만능은 아니다. 우선 세포 단계 치료는 가능하지만 장기 단계 치료는 아직도 요원하다. 장기는 여러 종류의 세포가 모여 특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

시험관에서 배양한 세포들을 간이나 심장 등 장기의 형태로 재구성하기 위해선 고난도의 주형 기술이 따로 필요하다. 따라서 5~10년 뒤 줄기세포 치료가 도입되더라도 여기서 만든 장기로 간 이식이나 심장이식 수술을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 도움말 주신 분〓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 차병원 정형민 박사, 강남미즈메디병원 윤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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