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홍콩갑부가 일궈낸 난사개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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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이 자랑하는 공업지대 주장삼각주의 마지막 요지로 불리는 난사(南沙)개발구는 이 마을 출신 홍콩 재벌 훠잉둥의 집념으로 탄생했다.

마카오 도박업계의 큰 손인 훠잉둥씨는 부동산 개발 등으로 20억달러의 재산을 모은 거물.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서방이 대중국 금수조치를 취했을 때 아랑곳않고 의약품 등을 중국에 조달해 주는 등 홍콩 기업인 중 가장 친중국 인사로 꼽힌다. 개방후엔 중국 정치협상위원회 부주석이 되기도 했다.

1990년 훠잉둥씨는 이런 인맥과 영향력을 무기삼아 고향 난사개발을 밀어붙였다. 당시 난사는 지금은 직선으로 1시간이면 충분한 광저우까지 가는데만 일주일씩 걸리는 오지 중 오지였다.물론 중국의 3대 공업지역인 주장삼각주 개발계획에도 제외돼 있었다.

훠잉둥씨는 시를 설득해 길을 닦고 땅을 골랐다. 기초시설 공사에 든 30억위안(약 4천8백억원)중 20억위안을 훠잉둥씨가 댔다. 93년엔 중앙정부를 설득해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로 인증을 받았다. 25개의 도로와 배수시설은 물론, 병원.학교.체육관을 짓고,부두개발까지 나서 홍콩까지 정기여객선을 운항하는 항로도 개설했다. 훠잉둥씨는 이 모든 사업에 직접, 또는 합작형태로 돈을 끌어댄 것으로 알려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난사개발구는 해변을 낀 지중해식 단독주택단지와 골프장이 들어선 전원도시인 동부지역과 공단이 빼곡한 서부지역을 합해,이상적인 전원형 공업도시로 바뀌었다.

난사경제개발구 왕이민(王益民)과장은 "고립무원의 어촌이 지금은 2백50여개 외자기업과 4억달러가 넘는 외자를 유치한 첨단 공업구가 됐다"며 "난사는 중국의 발전신화의 숨은 주역 화교기업인의 힘과 역할이 잘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훠잉둥씨는 물론 난사개발구의 지분 51%와 홍콩~난사간 정기여객선 운영권, 동부 주택지 개발권 등을 통해 짭짤한 이득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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