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좌절된 욕정 '센터 오브 월드'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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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의 성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극단적이나마 그 형태를 예측해본 영화가 '센터 오브 월드'가 아닐까 싶다.

현대 첨단기술의 집결지인 실리콘 밸리와 그 주변에 포진한 스트립 바. 그 둘 사이의 충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웨인 왕 감독은 디지털 시대의 좌절된 욕정을 자극적 화면에 녹여낸다.

20세기 산업화 사회의 거세된 남성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처럼 웨인 왕 감독은 인터넷 시대의 무너진 남성을 표현한다.

그리고 로렌스처럼 이를 구원하는 통로로 여성성의 상징인 '자궁'을 제시한다. 하지만 웨인 왕의 자궁은 비교적 희망이 살아 있었던 로렌스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다는 점에서 더욱 비관적이다.

인터넷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리처드(피터 사스가드)가 낮에는 드럼을 치고 밤에는 스트립 걸로 생활하는 플로렌스(몰리 파커)에게 1만달러를 제시하며 사흘간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성에 몰입하려고 든다.

그러나 결코 키스도 삽입도, 개인사에 대한 질문도 허락되지 않는 '불구의' 여행일 뿐. 그 짧은 사흘간의 만남과 상처가 주된 내용이다.

결국 '센터 오브 월드'는 육체의 건강함을 상실한 디지털 사회에 대한 반기로 풀이된다. 감독은 그 반발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려는 듯 오히려 육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국내 개봉 화면에선 일부 민감한 화면이 삭제됐다. 18세 관람가.8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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