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가짜 백태'…가짜 수면제로 자살도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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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전 하얼빈의 한 20대 여인은 사귀던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심야에 유언장을 팩스로 보낸 뒤 수면제를 한웅큼 집어삼켰다. 아침에 팩스를 받아본 남자는 경찰에 신고한 뒤 여자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웬걸, 축 늘어져 있어야 할 여자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경찰은 여자가 일부러 자살소동을 벌인 것이라 의심했지만 조사결과 수면제가 가짜로 밝혀졌다. 그뒤 약국을 대상으로 가짜 약품 단속이 벌어졌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지난 9월 베이징 공안국은 '가짜 증명서 전시회'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적발된 가짜 증명서가 모두 5천4백 종류나 됐다. 호적증명, 학력증명, 결혼증명, 공안당국의 신원증명 등 공문서는 물론 미국 제약회사의 비아그라 정품증명서까지 포함돼 있었다. 가짜 증명서를 구별하라는 목적의 전시회였지만 워낙 종류가 많고 진짜 같은 것이 많아 외국인에게는 불신감을 더 키워줬다.

셴양(瀋陽)의 조선족 관광안내원 崔모씨는 한국인 단체관광객에게 주의주는 것이 두가지 있다. 술집에서 양주를 시키지 말라는 것과 길거리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를 사먹지 말라는 것. 양주는 웬만하면 가짜고 꼬치구이는 양고기 한점 걸러 쥐고기를 끼워넣는 곳이 적잖다고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중국에선 '가짜가 진짜를 구축한다'는 현실로 다가온다. 비싸게 주고 진짜를 사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중국인들도 진짜를 골라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짜가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골탕먹는 것은 소비자들과 정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특히 기업은 가짜에 속은 소비자들의 원성을 대신 듣는 것은 물론 정품을 내놓아도 가짜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삼성 애니콜의 경우 하루도 못 가는 가짜 배터리가 판을 치는 바람에 정품을 팔아도 "배터리는 가짜일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중국 정부가 지속적인 단속활동을 벌인다고는 하지만 아직 '가짜천국'이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문서가 버젓이 위조되고 있으므로 중국정부조차 일종의 피해자인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가짜박멸에 고심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단속권을 지닌 것은 아니고 정품의 가격을 가짜 수준으로 낮춰 가짜를 시장에서 자연 퇴출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혼다는 중국에서 곧 초저가 오토바이를 생산, '가짜혼다'를 몰아낼 계획이다. 또 게임업체 킹소프트도 정품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품 수준으로 값을 낮추기로 했다. 마진이 줄지만 가짜 때문에 매출이 주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낫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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