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처방전 흘려쓰면 의사 권위 올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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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주말 세살 된 딸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주사를 맞은 뒤 처방전을 받아 집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갔다.

그런데 약사가 처방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아닌가. "진료 받은 병원이 어디 있지요□ 처방전 글씨를 알아볼 수 있어야 약을 짓지…"라고 했다.

약사는 한동안 고민하더니 마침내 글씨를 해독했는지 약을 지어줬다. 아이가 마시기 쉽도록 여러 약품을 섞어 물약으로 만들어줬다. 나는 과연 약이 처방전에 맞게 제대로 지어졌는지 몰라 불안하기까지 했다.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되돌려 받고 보니 과연 글씨가 엉망이었다. 의사가 손수 쓴 처방전에는 한글과 영어가 마구 섞여 있었는데 알파벳을 휘갈겨 적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투여량.복용횟수 등 약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숫자들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도록 모호하게 씌어 있었다. 몹시 혼란스러웠다.

의사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한다. 때문에 처방전을 인쇄된 글자처럼 반듯하게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약을 조제하는 약사가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는 써야 할 것 아닌가.

또 약국에서 처방전 내용을 컴퓨터로 입력할 때 한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왕이면 약품 이름도 영어 대신 한글로 표기하면 좋을 것이다. 처방전을 알아보기 어렵게 쓰면 의사의 권위가 올라간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의료계의 각성을 촉구한다.

박동현.서울 관악구 봉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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