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동네] 겉만 번지르르한 미술관 건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얼마 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 한강에서 엄청난 규모의 물줄기가 뿜어져 올라가는 모습이 언론에 크게 소개되었다.

서울시에서는 물기둥 높이가 2백2m로, 미국의 파운틴힐 분수대(1백70m)와 스위스 레만호 분수대(1백40m)를 제치고 내년 기네스북에 1위로 소개될 것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시 뉴스에서 본 분수대의 물줄기는 그리 시원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1등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는 남근 중심의 권위주의 사회임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다. 이처럼 규모나 크기 등 외형에 대한 집착은 국제 규모의 행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것이 선거용 행사이든,남은 예산의 처리든 간에 일회성 단발 행사,내실 없는 허장성세로 점철된다. 각종 엑스포와 비엔날레, 국제 조각공원,너나할 것 없이 동원된 관객 일색이고 이벤트적 행사로 일관된다.

어디 행사뿐이겠는가. 수백억원을 쏟아 부은 전시. 공연시설이 전문 인력이나 프로그램, 전시 전용 공간을 변변히 갖추지 못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이 규모에 비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심지어 지방의 한 대규모 문화예술회관은 전문인력은 고사하고 전시장 벽면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작품을 걸 수도 없을 지경이다.

예술의전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자랑하는 관계자의 모습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리에겐 외형만 뻑적지근한 미술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록 작더라도 나름의 개성과 경쟁력을 갖춘,그런 곳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전소를 보수해서 만든 영국의 테이트 모던이나 르노 자동차 공장을 미술관으로 개조키로 최근에 결정한 프랑스의 문화에 대한 마인드는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윤태건 <카이스 갤러리 디렉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