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성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둘러싸고 해프닝이 있었다. 춘향역으로 당시 고교 1년생이던 신인 이효정양을 캐스팅했다. 그의 나이가 춘향과 같은 16세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정사장면을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결국 제작진이 문제의 정사신을 대거 삭제해 이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이로 인해 막연히 성인일 것으로 생각되던 춘향의 나이가 16세라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잣대로 보니 춘향이 미성년이지 옛날엔 성인이었다.명나라 구준(丘濬)이 편찬한 『주자가례』를 보면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관례를 치른다"고 돼 있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첫번째인 관례는 댕기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갓을 써 어른이 됐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여자아이의 경우는 계례라 하여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다. 관례나 계례를 올린 사람은 '해라'대신 '하게'란 호칭을 들었고, 이름도 자(字)나 당호(堂號)를 불렀다.

어엿한 어른 대접이다. 그러니 춘향과 이도령의 '진한' 로맨스가 당시 관습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하기야 셰익스피어의 만고의 러브 스토리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 줄리엣도 15세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성년이 되는 나이가 늦어져 이제 '16세의 정사'는 대부분 문명세계에서 불법행위로 간주된다. 성년 연령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독일이나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대부분 주가 만 18세지만 오스트리아는 19세, 이웃 일본은 20세다. 이탈리아는 21세로 좀 늦다.일본 민법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우리 민법은 일본처럼 만 20세를 성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년이 되면 하나의 독립된 인격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한다. 선거권을 갖게 되고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 약혼이나 계약체결 등 법률행위도 자유로이 할 수 있다. 남자는 군대도 가야 한다.

그러나 법마다 규정이 달라 혼란스럽다. 예컨대 청소년보호법상 성년은 19세여서 미성년 대학생에 대한 술.담배 판매가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정부가 성년 연령을 19세로 낮출 계획이라고 한다. 요즘 애들 중학생만 되면 부모보다 덩치가 커지는 걸 감안하면 타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등 파장도 크다고 한다. 특히 유권자가 그만큼 늘어나 정치권의 관심이 큰 모양이다. 젊은 유권자가 느는 게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유재식 베를린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