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도 이전, 원점부터 논의하는 게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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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을 원점부터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부터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수순이다. 강 장관이 제시한 '국토의 균형발전, 수도권 과밀해소, 충청권 주민의 민심수습'이라는 세 가지 원칙도 바람직한 기준이다. 강 장관은 그러나 충청권 주민과 열린우리당이 반발하자 언론 탓을 하며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실망스러운 태도다.

충청권 주민과 열린우리당이 바라는 것은 청와대와 국회만 뺀 정부기관을 모두 옮기는 행정특별시 건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도 이전 예정지로 지정됐던 공주.연기 주민과 주변 충청도민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엄청난 국가재정과 장기적인 국가경쟁력이 걸린 사안을 단순히 민심 수습 차원으로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대통령과 행정부서 전체가 따로 떨어져 일하는 경우는 없다. 청와대를 빼고 행정부만 옮겨 행정특별시를 만든다는 것은 국가 운영의 효율성은 아예 고려도 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아무리 정보통신이 발달해도 중요 업무에서의 면대면 논의가 가지는 효과와 속도를 따르기 어렵다.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행정효율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서 간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주.연기 지역에 행정특별시를 건설하면 서울과 충청권의 통행량이 늘어나면서 수도권과 충청권이 광역권으로 이어져 국토균형발전에 역행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다면 그보다 과감한 지방분권을 통한 지방주도형 지역균형개발, 기업도시 건설, 관광벨트 개발 등이 모색돼야 한다. 또 해당지역 주민들의 민심수습도 중요하다. 그 방안으론 연구.교육기관과 이에 연계된 공공기관의 이전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특별시 건설은 헌재의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겠다는 또 다른 오기에 다름없다. 제로 베이스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옳은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