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회동 실망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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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의 엊그제 청와대 회동은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결과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 교환도 없었고, 여야의 대결국면을 풀어갈 만한 계기를 마련하지도 못했다. 정치 지도자들끼리 만나 밥 먹고 얘기를 나눴다는 표피적 의미는 있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국내외에 어려운 게 많은데 정치가 원만히 풀리지 않을까봐 국민의 걱정이 많다"고 했다. 바로 그것이 청와대 회동이 마련된 이유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회동 분위기에 대해 "글쎄요"라고 의미를 두지 않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불쾌해하고 있다. 이럴 바엔 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박 대표가 남북 정상회담 추진 여부를 묻자 노 대통령은 "아무런 준비나 진행되는 게 없다"면서도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서는 소문을 내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해 진의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에 대한 정치력 발휘를 요청하자 노 대통령은 "국회와 정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국이 꼬이고 국론이 분열된 현안에 대해서는 발언을 피해간 셈이다.

"이젠 영수정치의 시대는 지나갔다"거나 "대통령이 당을 지휘, 명령, 감독하는 시대가 아니다"는 대통령의 말은 원론적으로는 옳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평당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는 게 좋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 내 보안법 점진적 개정론자들의 입지가 현저히 좁아진 게 현실 아닌가.

과거사 법안 등 소위 여권의 '4대 개혁법안'이 대통령의 의중과 직결돼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4대 입법이 무리하게 추진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야당 대표의 요구에 대통령이 '당정 분리' 논리를 내세워 발을 빼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어렵게 만난 정치지도자들의 대화가 언어의 유희나 책임 전가로 끝나서는 국민에게 실망만 안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