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추적 따돌리려 전화번호 임의로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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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빌려 쓰고 발신 번호까지 바꿔
수능 부정 치밀한 수법

26일 경찰에 적발된 휴대전화 커닝 수능부정 사건의 또 다른 조직의 학생들은 부정행위가 발각되지 않도록 휴대전화 발신번호까지 조작하는 등 이미 적발된 141명의 학생보다 훨씬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본지가 단독 입수해 촬영한 수능 부정 휴대전화 메시지에 수신된 번호를 경찰이 통화 내역 조사 등을 통해 역추적한 결과 적발됐다. 이 휴대전화에는 커닝 가담자들이 작성한 답안이 담긴 메시지와 4개의 발신번호가 남아 있었다.

◆ 발신번호 조작=본지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객관식 정답을 보낸 발신번호 011-9622-XXXX의 소유주는 전남 목포시에 사는 C씨(67)로 수능 당일 C씨가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C씨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학생은 물론 수험생인 자녀나 손자도 없고 그날 휴대전화를 빌려준 사실이 없다"며 "이동 통신사에서 통화 내역을 조사해 보면 수능 커닝과 관련 없음이 밝혀질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확인한 또 다른 발신번호 010-8221-XXXX 휴대전화 소유주는 광주 모 중학교 학생(16)이었다. 경찰이 이 학생의 통화 내역을 조사한 결과 수능 답안이 찍힌 시간대에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쓴 수법은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SMS) 편지쓰기 메뉴에서 답을 적은 뒤 부정 응시자들에게 보내면서 실제 휴대전화의 번호를 지우고 다른 번호를 발신번호로 입력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누군가 답안을 받으면서 발신번호를 기억해 나중에 신고하더라도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회사 관계자들은 "각 통신회사에서 SMS 발신 내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 의뢰하면 발신번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빌린 휴대전화 섞어 사용=수능 부정 주동자들은 또 후배 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최대한 많이 빌린 뒤 이를 도우미나 답안을 받은 부정 응시자들에게 나눠줬다.

'선수'나 '도우미'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적발된 '제2조직'에 포함된 광주 K고 A(19)군은 수능 전에 일부 중학교의 '힘깨나 쓰는'학생들을 통해 휴대전화 60여개를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새로 적발된 조직에 대한 경찰 수사는 가담자 확인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모두 남의 휴대전화를 사용해 가담자 본인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조사를 통해서는 송수신한 메시지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부정행위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교에서 빌려 사용한 전화기를 일일이 찾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한 경찰관은 "이들의 부정행위 수법이 이전에 검거한 학생들보다 치밀해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광주=서형식.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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