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참총장 사의 '자리에 연연 안한다'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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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투서가 발단이 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의 사의 표명은 육군 최고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군 검찰이 자신을 겨냥했다는 얘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다.

군 검찰이 진급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육본이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비쳤고, 그 복판에 총장이 서게 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감도 그를 짓눌렀다. 남 총장은 "인사가 공정했고, 투서 내용에 억측이 있다"고 주변에 말해 왔다. 그런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측에서 남 총장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국회 국정조사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자 '저항'과 '굴복' 사이에 고민해 왔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던지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육참총장이 통수권자의 요청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사표를 내는 행위는 자칫하면 항명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사의 표명은 일종의 승부수였던 셈이다.

남 총장은 이날 계룡대 집무실에서 평상시처럼 직할부대 등의 지휘보고를 받았지만 이미 물러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입장 표명의 시기를 저울질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육군 장성들의 불만이 급속히 확산된 것도 남 총장의 결심 시점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장성들은 "군의 자존심이 짓밟혔다""육군 전체가 매도됐다"는 등의 분노를 쏟아냈다. 이들은 특히 육본의 군인사 자료가 통째로 국방부 검찰단에 압수당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군 검찰이 캐비닛째로 압수한 인사 자료 속에는 장군 진급 대상자들의 소위 때부터 사생활 등이 기록된 파일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에 따라 육본을 압수수색한 군 검찰의 행동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다만 노 대통령이 남 총장의 사의를 신속하게 반려함에 따라 군내에서 고조되던 정치적 불만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 남재준 총장은

남재준(60) 육군참모총장은 수방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친 야전형 군인이다.

육사 25기로 현 김종환 합참의장과 동기다. 지난해 4월 총장으로 임명됐다. 임명 직후 그는 육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원칙에 충실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 총장은 지난 7월 국방부 장관 인선 때 후보로 검토되기도 했지만 윤광웅 현 장관에게 밀렸다.

이후 군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목표로 하는 군 사법개혁 문제가 나오자 비판적인 입장에 섰다. 군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다. 그 와중에 "정중부의 난…" 얘기를 했다는 헛소문도 나왔다. 헛소문 해프닝 이후 남 총장과 청와대의 사이가 더 벌어졌다는 게 군내의 분석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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