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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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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 무덤 앞에 서서 묘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버지와 어머니 휘자(諱字) 밑에 1918년 7월 24일~1978년 9월 20일 그리고 1927년 1월 7일~2001년 5월 12일이라는 생몰연월일이 새겨진 것에 새삼 눈길이 갔다. 특히 그 짧은 ‘물결표시(~)’ 안에 그분들의 삶이 응축돼 있단 생각이 묘한 향수를 자아냈다.

# 나는 아버지와 정확히 15년9개월을 살았다. 마흔다섯 나이에 막내인 나를 보셨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8년간의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학창 시절에 무슨 고민이나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혼자 포천 가는 길목의 교회묘지까지 가곤 했었다.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고민되던 삶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어오곤 했다. 그저 무덤가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학창 시절 같이 자주 아버지 무덤에 가지는 못했다. 삶이 던지는 문제는 여전함에도….

# 하지만 지금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한테 묻곤 한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하고. 이처럼 아버지는 내 인생의 길잡이요 스승이셨고 지금도 그렇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 석·박사 시절까지 적잖은 스승들이 계셨지만 외람되게도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은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학교’를 8년 다녔다. 몸져누워 계셨던 아버지는 으레 내가 학교를 다녀오면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셨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한테 온갖 것을 배우고 익혔다. 하늘의 별자리부터 옥수수와 해바라기·피마자 심는 법까지. 그리고 집안의 가풍과 사람의 도리 및 사리분별에 이르기까지. 글로 배운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몸져누운 아비로부터 몸으로 배웠다.

#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보면서 줄곧 든 생각이 있었다. 나이 오십에 남편을 잃고 오남매를 거느린 채 홀로 가족이 탄 쪽배의 키를 거머쥔 신세였던 내 어머니가 발견한 것도 거친 풍랑 이는 바다였으리라. 그녀는 그 바다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거듭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힘듦을 내색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푸념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감사하는 법과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담대함 그리고 기도를 통해 신 앞에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내 삶 최고의 스승이었다면 어머니는 내 영혼의 교사였다.

# 최고의 스승인 아버지와 영혼의 교사인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응축된 비석의 물결표시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물결표시 안에 내가 함께했던 삶의 시간들이 더 없는 배움과 익힘의 순간들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게다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게 때 맞춰 인생의 보충수업까지 해주시지 않는가. 세상에 이런 스승, 이런 교사가 또 있겠는가. 비단 나의 경우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지 누구에게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최고의 스승이요 교사다. 세월이 가고 형편이 달라져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한 주 간격으로 연이어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닌가 싶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