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량 줄었지만 쌀 딜레마는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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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진행됐던 1993년과 쌀 협상이 진행 중인 2004년은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그때나 지금이나 '쌀'이라는 단어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 닮았다. 쌀을 포함한 농업 협상은 93년 12월 13일 타결됐다. 당시 UR 농업협정문 부속서에는 한국에 대해 쌀의 완전개방(관세화)을 10년간 유예하되 10년 시한이 끝나는 2004년 말까지 관세화 유예 여부에 관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올 들어 시작된 쌀 협상은 바로 이 10년 시한이 끝나게 됨에 따라 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쌀' 시장의 문턱을 어떻게 낮추느냐를 놓고 쌀 수출국들과 어려운 협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UR 당시엔 시장개방 여부 자체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현행대로 완전개방(관세화)하지 않는 대신 해마다 일정량의 쌀을 수입할지, 아니면 수입 쌀에 관세를 매겨 시장을 완전개방할지를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대통령 임기 전반부에 협상이 진행되는 것은 비슷한 상황이다. 농업협상 주역인 허신행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44대)과 허상만 현 농림부 장관(54대)이 공교롭게도 둘 다 순천 출신에 허(許)씨인 점도 눈길을 끈다. 문을 더 열라는 미국 등의 개방 압력과 빗장을 계속 지켜달라는 농민의 목소리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 역시 변한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쌀'의 무게는 다소 줄었다. 요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이슈가 새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쌀 소비량도 93년 110.2kg에서 83.2kg으로 27kg(24.5%) 감소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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