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총재 사퇴 왜 질책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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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 11월 16일자 중앙시평에서 유석춘(柳錫春)교수는 "대통령제와 정당정치를 수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맡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상식이다"며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책임회피라며 질책했다.

***柳교수 상식 오류 투성이

오래 전부터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를 요구해왔던 한나라당 의원이나 필자는 柳교수 시각에서 보면 한마디로 몰상식한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 학자나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총재직을 사퇴한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들조차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리는 현실에서 柳교수의 상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선진민주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의 정당에는 총재직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정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남미의 권위주의 국가에서조차 대통령이 일률적으로 총재직을 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치를 위해서는 정당의 민주화가 필수적이지만 같은 민주국가에서도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인지 대통령중심제인지에 따라 정당의 역할과 구조는 매우 다르다. 의원내각제 국가는 행정과 의회를 일원화함으로써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꾀한다. 의회에서의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므로 다수당의 당수는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다.이런 국가에서는 의원의 교차투표가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강한 정당 규율을 적용하는 '책임정당제'가 발달돼 있다.

반면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3권 분립의 정신에 따라 의회는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므로 의원직을 유지한 채 내각에 참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정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 국정운영에 교착상태가 발생한다.

하지만 원내 소수당을 이끄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별 무리 없이 야당의원의 도움을 받아 국정운영을 해왔다. 의원의 교차투표가 가능할 정도로 의원의 자율성이 높은 반면 정당의 규율은 약한 '실용정당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법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했지만 기본 골격은 대통령중심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원내각제 국가의 정당보다 정당의 규율이 강할 뿐만 아니라 비민주적이며 사당(私黨)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문제는 대부분 정당의 실패에서 기인한다.정당이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으로 반영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총재와 총재의 측근이 정당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여당은 대통령이 통제하면서 야당의원에게만 대통령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교차투표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며 높이 살 만한 결단이다. 한국 정당은 이를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정당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지 간판을 바꿔 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신당을 창당해서라도 정당의 체질을 혁신하기로 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치발전의 불씨에 찬물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쇄신 기회를 놓친 것을 감안하면 柳교수가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조건 불신함으로써 얻을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서로 불신만 한다면 이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지만 대통령의 결단을 믿어본다고 해서 크게 손해날 것도 없다.

柳교수는 오랫동안 신뢰를 연구해온 것으로 안다.그런 지성인이 대통령을 조폭에 비유하는 천박함은 차치하고라도 듣도 보도 못한 상식에 근거해 무차별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것은 모처럼 맞은 여야 협력의 분위기와 정치발전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신과 빈정거림이 아니라 대통령의 결단이 결실을 보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정치학>

(이글은 柳錫春 교수의 중앙시평 '차카게 살자'에 대한 反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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