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화질 걸맞는 프로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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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상파의 디지털 방송시대에 시청자들은 과연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정부와 가전업계는 디지털시대에 맞춰 고화질(HD)시청이 가능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방송계에선 디지털 방송의 요체는 콘텐츠, 즉 볼 만한 프로그램인데 현 국내 실정으로는 기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허행량(許倖亮.매체경제학) 세종대 교수는 "프로 농구.축구 등 스포츠와 문화.연예.오락 등의 분야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미국.유럽과 달리 국내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프로그램은 볼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연예인의 신변잡기 등 말초적이고 경쟁력이 없는 KBS.MBC.SBS 지상파 방송을 그대로 고화질로 옮기는 데 그친다면 디지털 방송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방송계에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고 디지털 방송을 계속하면 국내 방송은 외국의 프로그램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업계는 경쟁국에 앞서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술.산업논리'를 내세우는 데 바쁘다. 때문에 정부와 방송사.스포츠계.산업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 콘텐츠 개발을 위한 장기적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예로 동남아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바람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꼽힌다. 학계는 또 정부가 그동안 시청자의 편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디지털 방송방식을 결정한 것을 비판했다.

최영묵(崔榮默.신방과) 성공회대 교수는 "정부가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방송방식을 결정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추가비용 없이 이동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뺏긴 셈"이라고 말했다. 날씨.교통정보 등 부가서비스를 현재의 지상파 방송들이 하지 않고 별도의 사업자들이 맡을 경우 시청자들은 돈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위원회가 전문성을 갖춰 방송 기술을 포함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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