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미약(媚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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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욕을 불러 일으키고 정력을 증강시키는 사랑의 묘약을 미약(媚藥)이라 한다. 같은 뜻이라도 어쩐지 좀 저속한 느낌이 드는 최음제란 말보다는 한결 그럴싸한 표현이다. 영어로는 애프러디지액(Aphrodisiac)이라 하는데, 그리스 신화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서 온 말이다.

몸(=정력)에 좋은 음식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특히 남성들의 집착은 유별나다. 온갖 몬도가네 식품이 다 등장한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이 문제 삼고 있는 보신탕도 물론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툭하면 우리 개고기를 걸고 넘어지는 유럽사람들도 과거에 이집트의 미라 가루를 최음제로 애용했다고 하니 그리 큰소리 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렇듯 따지고 보면 강정(强精)식품에 대한 선호는 동서고금에 큰 차이가 없다. 세계 어디서나 물개나 사자.호랑이 같은 동물의 생식기는 정력에 좋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밖에도 뱀.장어.자라.코뿔소 뿔.굴 등은 널리 애용되는 정력제다.

식물성으로는 나폴레옹이 즐겨 먹었다는 아스파라거스와 카사노바가 애용했다는 초콜릿을 비롯, 인삼.마늘.부추.석류.유채.감초뿌리.카카오 열매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몇가지를 빼면 우리나라의 스태미나 식품과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 가운데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된 것은 인삼과 마늘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몸에 해롭다고 한다.

근래에는 각성제 마약이 미약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게 '히로뽕'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이다. 1888년 나가이 나가요시(長井長義) 도쿄(東京)대 교수가 마황(麻黃)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면서 발견한 메스암페타민은 1941년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히로뽕(ヒロポン)'이란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졸음을 쫓고 피로를 없애는 효과에 착안,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philoponos'에서 따온 이 말은 '히로(疲勞)'를 '뽕'하고 날려 보낸다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군수공장 징용자들이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피로회복이나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제공됐고, 패전후엔 허무감을 달래기 위해 유행했다.

청순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한 여성 탤런트가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고 한다. 본인은 마약인지 몰랐다고 하지만 전도양양하던 인기 연예인이 또 마약에 희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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