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병원 줄 휴·폐업 … 10년 만에 정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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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북 진안군 진안읍의 권윤혜(51·여)씨는 “병원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기관지가 붓고 열·기침이 심해 두 달 동안 전주의 이비인후과를 다녔다. 진안군에는 이비인후과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만 해도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동부병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병원이 경영난으로 2008년 1월 문을 닫은 이후 이런 불편이 생겼다. 전주까지 승용차로 40분, 버스로는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권씨는 또 주말만 되면 불안해진다.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주변에 응급실이 없는 탓이다. 권씨는 “주말에 아프면 종전에는 근처 병원을 찾으면 됐는데 지금은 전주의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야 한다”며 “돈도 훨씬 더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동부병원은 1988년 정부로부터 저리 자금을 지원받아 문을 열었다. 취약지역 의료접근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이었다. 그 뒤 전북 진안·무주·장수군의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거점의료기관 역할을 해왔지만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휴업했다. 이 병원 양승원 차장은 “현재의 인구로는 현상 유지를 할 수 없었다”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공공보건의료법 때문이다. 공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민간병원(2500여 곳)에는 지원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적십자병원, 시립·군립의료원 등 공공기관(181곳)만 지원 대상이다. 그 새 문을 닫은 지방 병원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는 95곳이나 됐다. 분만 기능을 갖춘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도 2001년 21곳에서 지난해 48곳으로 증가했다.

대도시의 민간 병원들도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고전하긴 마찬가지다.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어린이병원, 대형병원들의 신생아중환자실 등은 운영할수록 적자다. 특히 어린이병원은 연간 40억~150억원가량 적자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공공의료과장은 “그동안 민간 병원이 의료비를 상승시키고 서민 보호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불신했기 때문에 공공기관만 지원했다”며 “앞으로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공적인 역할을 하면 공공의료기관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약지역 민간 병원과 산부인과, 어린이병원, 고위험 분만센터, 권역별 재활센터 등이 대상이다.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의료법 개정안을 12일 입법예고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민간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법률을 만든 뒤 10년 만에 기본 틀이 바뀐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 계획을 발표하고 3조원 이상을 투자하면서 민간 배제 원칙은 더 굳어졌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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