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호의 흥행이 뭐길래] 흥행은 아무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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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영화계 사람은 모두가 점쟁이다. 개봉을 앞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 영화 (관객이)얼마 들 것 같애""저 영화는 어때"하면서 흥행 예측치를 묻고 답한다.

특히 마케팅 담당자들은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필자는 그렇게 물어올 때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예측했던 스코어가 개봉과 함께 완전히 빗나가서 낭패를 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답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기때문이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사들이 가장 예민해 지는 건 언론과 평단의 반응이다. 시사회가 끝나면 이들은 온갖 영화적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 영화를 품평하고 흥행 성적을 예측하기도 한다.

영화사들은 신문 기사나 리뷰가 호의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대박이 터지는 꿈을 꾸기도 하면서 밤잠을 설친다. 마케팅 담당자들도 덩달아 좌불안석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작년 여름 개봉한 '비천무'의 경우, 시사회가 끝나자 언론과 평단의 리뷰 기사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들어봤자 서울 30만명이야…, 한 20억원 이상은 깨질 것 같군…"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점쟁이가 돼 예상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제작사조차도 긴가민가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나 '비천무'는 서울 74만명, 전국 2백34만명을 동원하며 언론과 평단, 업계 관계자들의 예측을 여지없이 배반했다. 이럴 때가 영화 마케터에게는 가장 신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언론과 평단은 비평으로 그 책무를 다하고 설혹 예측했던 스코어들이 뒤집어져도 '이상현상'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 한편이 1년 농사가 아닌 평생 농사일 수 있기 때문에 모름지기 간절함이 더 할 수밖에 없다

'비천무'의 성공에는 마케팅 과정에서 와이어 액션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낸 것이 주효했다. 이것은 철기십조라는 무사들이 지붕 위를 날고 강 위로 솟아오르는 장면으로 '비천무'제작팀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었다.

관객들은 문제의 와이어 액션 장면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확인하기를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관객이란 당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뭔가가 영화에 있다 싶으면 그것을 소비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화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모두 흥행이 잘 될 걸로 예상한 작품이 망하기도 하고 "한 10억원은 날리겠군"하면서 속으로 내다 버린 영화가 성공을 안겨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계에 심한 배신감을 안겨준 '조폭 마누라'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작품성은 논할지언정 섣불리 흥행 스코어는 예측하지 말자. 관객이 몰리는 영화에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주필호 <주피터 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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