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군 시대… 보수적 조직에 여성파워 씨 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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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일 군 정기인사에서 창군 53년 만에 여성장군이 나온 것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를 지니고 있는 군에서도 '여성파워'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과거 여성 군인은 남성 중심의 군조직에서 보조적 역할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군인이라기보다 여성으로 인식돼 근무부서와 역할에서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여성장군 물망에 올랐던 전투병과 여군대령들이 군경력 때문에 중도탈락한 것이 그 예다.

여군은 그동안 주로 첩보.정훈.심리전.행정.헌병 등 비전투 분야에 배치되는 바람에 여성장군 후보들 역시 전투병과의 장군진급에 필수적인 연대장 등 지휘관 경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장군 배출을 계기로 전투병과 여군들도 남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여성지휘관'시대를 열 수 있게 됐다. 우선 장군진급을 희망하는 전투병과 여군들이 경력관리를 위해 대대장.연대장을 지원하면 군 수뇌부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임명을 해야 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병과 여군이 장군으로 진급할 경우 보병부대의 핵심인 여단장도 맡을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여군들이 군내에서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아직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미군에선 군의관과 간호장교 모두 병원장으로 임명될 수 있으나 우리 군의 경우 간호장교는 병원장이 될 수 없게 규정돼 있는 등 아직도 곳곳의 인사체계에서 남녀차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부분의 여군들은 여성장군 탄생을 자축하면서도 내심 이번 인사에 대해 편치 않은 심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여군 2천6백여명 중 간호병과는 8백여명에 불과한데 어떻게 첫 여성장군을 배출할 수 있냐"는 게 전투병과 여군들의 속내다. 따라서 국방부는 내년엔 전투병과 여군대령을 장군으로 진급시킬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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