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작은 정치' 해야 사회갈등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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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 5공화국 시절부터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작은 정부'는 개혁 슬로건의 단골메뉴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개혁안 대부분이 그렇듯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개혁안도 한국 문제를 분석해 만든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작은 정부 개혁안은 과도한 복지프로그램 때문에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는 것을 겪은 유럽 복지국가에서 1980년대 초에 나왔다.

이들 국가에선 공무원이 인구의 9~10%나 됐고 개혁 후에도 7%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정부재정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우리나라의 경우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개혁의 시행 전에도 공무원이 인구의 2.5% 밖에 안됐다.현재는 약 2%로 축소됐다. 공무원의 개념이 국가마다 다르긴 하나 정부의 규모나 재정에 있어 한국은 꽤나 작은 정부다.

그러나 이같은 통계를 제시해도 우리가 작은 정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정치와 정부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정부의 강한 통제력을 규모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민의 이런 오해는 정치인들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부패.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행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술수를 써왔다. 우리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우면서 행정부에 대한 숙청성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이 환호의 갈채를 보내는 동안 행정부를 손아귀에 쥔 부패정권이 탄생하곤 했다.

행정부를 장악한 정치권은 명목상 내세운 작은 정부의 논리를 가시화하기 위해 통제기능을 담당하는 부처의 규모와 권역은 유지하면서 국민에게 직접 서비스하는 기관의 규모를 줄였다. 현 정권 초기에 소방.복지담당 공무원이 작은 정부논리에 희생당한 것이 그 사례다.

부정부패는 정부가 정책 및 규제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대상자에 따라 다른 혜택을 주고 부정한 대가를 얻는 것이다. 정책.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통제수단 없이는 부정부패를 쉽게 할 수 없다.

부정부패가 국민에게 알려지면 정치인들은 모든 책임을 행정부에 돌리고,행정부의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법을 제정한다는 명목으로 공청회.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몇몇 힘없는 공무원을 징계한다.

정치권은 국민이 개혁을 요구할 때마다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곤 했다.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제대로 한 사례는 아직 거의 없다. 행정부를 손아귀에 쥐고 공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낙하산 인사와 이사회에 대한 통제력 강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다. 언론개혁 역시 국민이 원하는 공정하고 다양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며 세무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비롯한 국민은 정치권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정치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을 도모하려는 순박한 소망을 거둬들일 때가 됐다. 영웅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빨리 접을수록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은 '작은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작은 정치는 기업.정부.언론 등에 대한 통제를 정치인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정치권의 통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를 포함한 사회집단이 비슷한 힘을 갖고 견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정부.언론.시민단체가 전략적으로 상호협력해야 한다.사회집단간의 갈등은 정치인들이 강한 정치를 유지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다.

조성한 ·중앙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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