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수명 '장미 한 다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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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꽃집 주인이 포장을 했을 때 장미는 폭소를 터뜨렸다.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꽂았더니 폭소는 더 커졌다. 나는 계속해 물을 주었다. 장미의 이름을 부르며. 장미는 몸을 뒤틀며 웃어댔다. 장미 가시가 번쩍거리며 내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가시들을 훔쳤다. 나는 가시들로 빛났다. 화병에 꽂힌 수십.수백 장의 꽃잎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수명(1965~ )'장미 한 다발'

어느날 저녁,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카페에서 처음 만난 젊은 여자가 그의 새로 나온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를 내게 주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속에 장미 한 다발이 폭발하고 있었다.

물도 주지 않았는데 장미꽃은 지금껏 시들지 않았다. 그 속에 빛나는 푸른 가시들 때문이었다. 꽃을 살 때는 가시가 많은 것으로 달라고 해야겠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도록 서슬 푸른 아름다움을 위하여.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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