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고양이를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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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년여 전 포스코의 예산낭비를 둘러싼 비판여론이 드세던 무렵이다. 엉뚱하게도 불똥이 서울 강남의 포스코센터 앞 환경조형물 '아마벨'로 튀었다.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프랑크 스텔라가 제작한 고가(高價)의 이 작품을 이참에 헐어내자는 맹랑한 분위기가 대세인 양 기승을 부렸다. 폭력이 따로 없는 여론몰이였다. 이때 분위기를 반전시킨 퍼포먼스 하나를 우리는 기억한다.

메가폰을 쥔 채 아마벨 앞에 섰던 아주대 이성락(의학)부총장과 대중가수 조영남의 '거리설명회'말이다. "과연 아마벨이 거대한 고철덩어리에 불과합니까? 아닙니다. 냉랭한 포스코의 이미지를 감싸주는 카오스의 미학이 놀랍습니다.

이런 명물을 예술 외적(外的) 이유로 허물어버린다면 세계가 웃습니다." 이 설명회를 계기로 극적으로 되살아난 아마벨은 지금도 건재하다. "노!"라고 말하는 딜레탕트의 용기가 '명물' 하나를 지켜낸 것이다.

그때 확실하게 문화동네 시민권을 따냈던 조영남이 이번엔 영화에 뛰어들었다. 요즘 문화계 최대 이슈인 '고양이를 부탁해'재개봉 운동 말이다. 그는 고사모(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결성과 함께 영화무대인 인천시에는 지자체 차원의 분발을 부추기고 있다.

호사가의 오버액션일까? 그건 아니다. 영화계가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고, 관객이 없어 조기종영 위기에 처했던 고양이가 극적으로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 작품을 경쟁부문에 넣기로 결정한 것도 그 맥락이다. 김동호 위원장의 결정이다.

여기서 수상한다면 재개봉은 떼논 당상이다. 애초 이 영화를 "한국영화 사상 최대수확"이라 언명했던 이효인 등 평론가들도 힘을 얻게된다. 작품에 합당한 평가만큼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다. 조폭영화에 밀려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양질의 작품들이 조기 종영을 밥먹듯 한다면, 한국영화의 앞날은 없다는 점이다.

생물학적 종(種)의 다양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좋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한국영화 사상 최고라는 건 주관적 판단이라 치자.

최소한 정재은이라고 하는 여성감독의 이 처녀작이 수작(秀作)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재개봉이란 좋은 문화상품에 합당한 사회적 경의(敬意) 표명이다.

해서 만일 그 결과로 고양이가 되살아난다면, 올해 보기 드물게 기분 좋은 뉴스의 하나로 꼽힐 게 분명하다. 기폭제 역할을 했던 딜레탕트 한 사람을 기억해두는 것은 그 다음 우리의 몫이다.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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