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진혁 칼럼

두가지의 병(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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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정상황이 계속 어둡기만 하다. 경제위기가 아니라며 5%대 성장을 장담해오던 정부가 마침내 자기 입으로 "5%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를 살린다고 모처럼 내놓은 소위 한국형 뉴딜정책은 사면초가에 빠지고, 연기금으로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자는 대통령의 말도 주무장관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 반대하고 있다. 외국에서 대통령이 기업의 애국심을 칭송한 발언이 들려온 바로 다음날 여당은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기를 쓰고 처리해 버렸다. 정쟁은 멈출 날이 없고 저질.무례.막말이 판을 치고 있다.

*** 국정능력 부족 여지없이 드러나

도대체 국정의 어느 구석에서도 희망과 낙관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이제 절망의 근원이 되고 있을 정도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동안 이 정부에 대해 많은 충고와 비판이 있어왔다. 코드정치를 하지 마라, 편가르기를 말라, 막말을 말아라, 헌법을 존중하라…는 등의 수많은 처방과 조언(助言)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 약발이 없었다.

그러나 1년9개월을 겪으면서 이제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지금 이 정부가 두 가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에는 국정의 이런 상황이 시행착오나 진보이념 또는 이상(理想)과잉 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믿어져 왔고 그런 식의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두 가지 병에 있다는 확신을 이젠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가지 병은 능력부족증이다. 국정능력과 정치력이 극히 낮은 수준임이 1년9개월 사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좋은 의도, 좋은 목표를 설정해도 그걸 이뤄내는 환경의 조성능력이나 추진능력이 너무 떨어진다. 최근의 부동산 정책을 보거나 소위 한국형 뉴딜정책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성매매금지만 해도 그 좋은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의 졸렬로 인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예상치도 못했던 격렬비판세력만 만든 꼴이다. 특히 야당과 대화하고 반대여론을 설득해 정책을 무르익히고 성사시키는 정치력.노련미.원숙성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바 4대 입법 추진방식 등이 그렇지 않은가.

집권 측은 흔히 비판자들에 대해 수구니 냉전사고니 하는 말로 반격하지만 무능을 이념으로 합리화할 수 없다. 일 못하는 것이 결코 진보일 수 없다. 진보도 진보대로 우수성과 능률과 업적이 있어야 평가받는 것이지 무능하고 대책 없는 것이 진보라고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의 경제침체와 국민불안이 진보 탓이라면 그런 진보는 나쁜 진보요, 진짜 진보를 욕보이는 것이다.

또 한가지 병은 신뢰부족증이다.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친북.반미가 아닌가, 반(反) 시장.반(反)기업이 아닌가, 성장보다는 분배가 아닌가 하는 등의 끝없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 그런 의심을 시원하게 씻어줄 성공적인 해명이나 실적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외교.안보불신도 심각하다. 돈의 뒷받침도 없이 자주국방을 외치는 까닭이 뭘까. 한.미 관계가 정말 괜찮을까 하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다. 철책선의 구멍만 해도 정부발표를 믿는 사람이 적다. 이런 신뢰부족 상황에서 정책의 추진력이 나올 리 없고, 정부의 공신력, 지도자의 리더십이 설 리가 없다.

*** 두가지 '부족증' 빨리 치료해야

게다가 집권세력에 대한 인간적 신뢰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지도층다운 언행과 책임감, 품위와 예의와 교양 모범… 이런 것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지도층으로서 일정수준 받아야 할 존경과 신뢰와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막말을 하고 까불고 무례하고… 하는 일이 너무 자주 문제가 됐다. 이런 인간에 대한 불신이 정책.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됨은 뻔하다.

능력.신뢰 부족이라는 이 두 가지 병은 실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능력이 부족하면 신뢰도 떨어진다. 신뢰가 부족하면 일이 잘될 리가 없다. 일을 잘해야 신뢰가 붙고, 신뢰가 있어야 일이 잘된다.

병이 있으면 치료를 해야 한다. 두 가지 부족요소를 빨리 보충해야 한다. 이제부터 남의 말도 좀 듣든가, 사람을 바꾸든가 무슨 방법으로든 부족요소를 보충해야 할 것이다. 지난 2년은 그랬다 치고 남은 3년을 위해서라도 뭔가 개안(開眼)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