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두산의 '원칙주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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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킬 것은 지킨다."

어느 음료 광고의 문구다. 우리 사회에서 이 말처럼 단순하면서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말은 드물 것이다. 특히 서로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며 페어플레이에 입각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스포츠에서는 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두산의 우승 비결은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철저한 원칙주의다. 두산은 고액 연봉자 관리와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현장(코칭스태프와 선수단)과 프런트(구단 관계자)의 업무 분담 등에서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흔들림없이 지켰다. 선수단에서도 스타 플레이어를 특별 대우하거나 외국인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다. 중심을 이루는 선수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나머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따라가게 했다.

2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0-4로 지며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두산은 그해 겨울 선수협 출범과 관련해 시련을 맞았다. 당시 강병규(은퇴).심정수(현대).김동주.박명환.정수근 등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선수협에 주축으로 참여했다. 위기였다. 구단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이들이 구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선수들과의 팀워크도 걱정해야 했다.

두산 곽홍규 단장은 "힘든 시기였다. 특히 강병규가 SK로 떠나고 1년 뒤 심정수를 현대로 트레이드했을 때 우리 팬들조차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나 그들을 감싸안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팀을 생각해야 했다"며 선수단 운영 원칙을 거론했다.

그 원칙은 ①포지션마다 중복되는 선수를 줄이고 ②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를 최소화하며 ③고액 연봉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등이다.

결국 심정수를 보내고 받아들인 심재학은 오른손 타자에 치우친 두산의 중심타선에 효과적인 균형잡이 노릇을 했다. 이번 시리즈 MVP를 차지한 팀내 최고액 연봉자(21만달러) 우즈에 관해서도 두산은 철저히 원칙을 지켰다.

우즈는 1998년부터 한국에서 활약하면서 늘 좋은 성적을 올렸고 해마다 재계약과 관련해 애를 먹였다. 그러나 두산은 우즈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남아주기를 원한다. 돈 때문에 떠난다면 잡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우즈는 스스로 가장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고 가장 자기와 스타일이 맞는 두산을 선택했고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두산은 우즈의 공격력을 산 것이 아니고 우즈의 마음을 샀다.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믿음'이라는 다리가 있었다.

곽단장은 트레이드에 관해서도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모든 선수가 트레이드 대상"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천하의 누구도 특별대우는 없다"는 뜻이다. 이 말 한마디는 주축 선수들에겐 섭섭할지 몰라도 팀 전체로 봐서는 사기를 올려준다.

두산의 승리는 원칙의 승리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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