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뉴스] 가출 20년 만에 귀가 92세 “20억 집 내놔라” 부부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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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A할아버지(92)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20여 년간 가출 생활을 하다 지난해 집에 돌아왔다. 그가 다시 찾은 서울 강남의 2층짜리 집엔 부인과 3명의 자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내 집이니까 이제 모두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은 이미 부인인 B할머니(80)의 소유로 바뀌어 있었다. 오랜 시간 외로움과 배신감을 견디다 못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집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것이다. 275㎡ 땅에 지어진 이 집의 가격은 약 2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동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이 이 집에 살지 않는다”는 내용의 거짓 신고를 접수해 가족들의 주민등록을 지웠다.

이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고소했다. 이후 석 달쯤 지나 서울중앙지검은 할아버지를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해 벌금 100만원을 청구했다. 그러자 이번엔 할아버지가 “정식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21일 재판에서 할머니는 “직업도 없는 남편과 살면서 자식 세 명을 길렀는데, 아흔 살이 넘을 때까지 가출해 바람을 피우다 돌아온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도리어 우리를 내쫓으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자녀들도 모두 어머니 편을 들었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 할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상우 판사는 할아버지 의견을 듣지 못해 사건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할아버지의 국선 변호인도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법원에 알려왔다.

할아버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달 28일 재판에 나가 내 주장을 펼 테니 상관 말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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