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이후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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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불량자 제도가 내년부터 사라질 것 같다. 정부와 여야 모두가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에는 찬성하고 있어 이 제도는 2002년 도입된 지 3년여 만에 없어지게 됐다.

사실 '30만원 이상, 3개월 이상 연체한 사람'은 무조건 정부가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는 현행 제도는 불합리한 면이 많았다. 이 기준에 걸리면 개인의 수입이나 상환능력, 금융기관 정책과는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신용불량자란 족쇄가 채워져 금융거래가 중단되고 취업 등 경제활동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 신용카드 대란 등이 겹치면서 신용불량자는 급증해 한때 380만명을 웃돌았고, 이들은 우리 경제의 현안인 내수 소비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각 금융기관이 독자적으로 연체 기준과 제재 수위 등을 결정, 시행토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다만 신용불량자 명칭을 없애는 이 조치가 마치 '신용 사면'으로 잘못 인식돼 빚 상환을 거부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는 사태를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배드뱅크 등을 통해 신용불량자의 빚을 탕감하거나 줄여줬으며, 그 바람에 일부에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있었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존 부채와 개인 정보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 이런 부작용이 재연되지 않게 해야 한다. 금융기관들은 기존 신용불량자들이 단계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정교한 상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이들의 회생 노력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음 과제는 각 금융기관이 개인의 신용에 관한 정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집.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개인 신용정보만을 수집.판매하는 신용정보회사(CB) 설립을 활성화하기로 했으며 이미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런 금융시스템이 구축돼야만 더 이상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이것이 금융 부실과 경제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이는 또한 신용사회, 선진금융으로 가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