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누가 될까” 식당·선술집 어딜 가도 토론 분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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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버스 앞 흰 셔츠)가 4일 스코틀랜드의 동(東)렌프루셔에 도착해 지지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동렌프루셔 로이터=뉴시스]

“노동당은 신뢰와 비전을 잃었다.”

영국 런던대 학생회관에서 5일 만난 스티브 브라멜(26·역사학 석사과정)은 집권 노동당에 대한 실망감을 이렇게 드러냈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고 있던 5년 전 총선에서는 여당인 노동당 후보에 표를 던졌다는 그는 “노동당에는 더 이상 나라를 이끌 에너지가 없다”며 “이번에는 자유민주당 쪽에 투표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옆에 있던 친구 캐서린 허먼(25)은 “노동당이 문제가 아니라 고든 브라운 총리 개인이 문제”라고 거들었다. 딱딱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총리의 이미지가 노동당의 득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선거 뒤 노동당이 자유민주당과 연대해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런던의 식당·펍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총선 얘기로 시끌벅적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누가 총리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대다수 시민은 보수당이 원내 제1당으로 등극하고 노동당이 집권 13년 만에 제2당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동의했다. 하지만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해 곧바로 정권 교체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라는 응답이 많았다.

보수당 승리, 노동당 참패는 도박판에서도 예견되고 있었다. 런던 거리 곳곳에 있는 도박중개업소 ‘윌리엄 힐’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노동당 승리의 경우 배당률이 20배로 나타났다. 보수당 승리에 돈을 건 사람들은 보수당이 이겨도 수수료를 제외하면 본전 정도만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일반인들이 그만큼 보수당이 승리할 확률을 높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영국에서는 선거 결과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 도박판의 예측은 늘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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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초점은 보수당이 의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맞춰졌다. 650석 중 326석 이상을 얻어 13년 만의 정권 탈환에 성공할지가 핵심 이슈인 것이다. 4일 실시된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의 설문에서는 보수당이 285석, 노동당 261석을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TV토론에서 큰 인기를 얻은 제3당 자유민주당은 7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예측대로라면 보수당이 2005년 총선 결과와 비교해 87석을 늘리는 대약진을 하지만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영국에서는 과반 의석을 얻은 정당이 없을 경우 정당 간 연대로 집권 세력이 결정된다. 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수당이 일단 집권하지만 통상 정권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44) 당수는 “무능한 노동당을 몰아내기 일보직전이다. 기권하지 말고 모두 투표소로 나와 달라”고 호소했다. 부동층 흡수로 과반 확보라는 기적적 승리를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59) 총리는 “보수당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달라”며 기존 지지층에 이탈 자제를 호소했다. 닉 클레그(43) 자유민주당 당수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자”고 외쳤다.

이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의 지지율이 수일 만에 2∼3%포인트 올라 30%대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당은 35∼37%로 현상 유지를 했으나 자유민주당은 24∼26%로 다소 하락했다. 자유민주당으로 기울었던 기존 노동당 지지층의 표심이 복원되고 있다는 징후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18년 만의 안개 판세
4가지 시나리오 나와

누가 차기 영국 총리가 될지는 예측 불허다. 통상 선거 수개월 전 노동당과 보수당 중 한쪽으로 판세가 기우는 기존 선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영국에서는 1992년 보수당의 존 메이저 총리와 닐 키녹 노동당수가 접전을 벌인 이후 18년 만에 나타난 안갯속 선거다.

총선 결과는 크게 네 가지로 예상되고 있다. 보수당이 과반에 근접한 수준으로 제1당이 되는 경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를 가장 유력한 상황으로 전망했다. 보수당은 과반에 10여 석 모자라는 수준에까지 이르면 군소 정당 및 무소속 당선자와의 연대로 연립정부 구성에 나설 계획이다. 이미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 등에 연대를 제안해 놓았다. DUP는 이번 총선에서 8∼1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보수당이 제1당이 되지만 과반에 근접하지 못해 노동당과 의석 차가 크게 나지 않는 경우다. 이땐 노동당이 자유민주당과의 연대로 집권을 연장할 수도 있다.

셋째는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없고 연대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74년 총선에서 4석 차이로 노동당에 뒤진 집권 보수당은 자유당(자유민주당의 전신)과의 연대로 정권 유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정당 간의 연대가 이뤄지지 않아 다수당인 노동당이 정부를 이끌었다. 하지만 정국 불안으로 반년 만에 다시 총선이 치러졌다.

넷째는 보수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얻는 경우다. 그러면 보수당의 승리가 선언돼 곧바로 정권이 교체되고, 캐머런 당수가 총리직에 오른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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