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1950년대 ‘국민 가수’ 봄날에 하늘나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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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누나∼”

그가 불렀던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은 어쩌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과 이별을 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고왔다.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원로가수인 백설희(본명 김희숙·사진)씨가 5일 오전 별세했다. 83세.

백씨는 지난해 말부터 고혈압에 따른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 측은 “고인의 병세가 최근 악화됐고, 오늘 오전 호흡곤란을 겪다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1943년 조선악극단원으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 백씨는 49년 KPK악단이 공연한 ‘카르멘 환상곡’에서 주인공역을 맡으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의 예명도 이때 지어졌다. KPK단장이자 작곡가였던 김해송씨는 “에베레스트 산정의 눈이 언제나 녹지 않는 것처럼, 최정상의 연예인으로서 늘 눈부신 자태를 간직하라”며 ‘백설희’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설희씨가 1966년 남편 황해씨와 함께 ‘황백가요극장 주제가’라는 타이틀로 취입한 음반 재킷.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씨가 제공했다. [연합뉴스]

백씨는 53년 작곡가 고(故) 박시춘씨를 만나 레코드가수로 활동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봄날은 간다’ ‘물새 우는 강 언덕’ ‘청포도 피는 밤’ 등 주로 박씨와 콤비를 이뤄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시키며 1950년대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잡았다. 가요연구가 박성서씨는 “가늘게 뽑아지는 미성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영화 ‘자유부인’에 출연하고 주제곡까지 부르는 등 연예계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였다”고 평가했다.

백씨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그의 가족이다. 백씨는 49년 새별악극단에 입단해 배우 황해(본명 전홍구, 2005년 작고)씨를 만나 결혼했다. 스타 부부의 탄생이었지만 바쁜 스케줄과 6·25전쟁이 터지는 통에 둘은 장남 전영록이 열 살이 되던 64년이 돼서야 ‘지각 결혼식’을 올렸다. 전영록씨의 딸인 보람(24)씨도 현재 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활동중이다. 3대째 연예인 집안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전영록씨는 “모자지간이었지만, 어머니는 연예계 선배로서도 너무 정갈하셨다. 아픈 모습을 보여주길 원치 않아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단장을 하셨다. 천상 연예인이었던 분”이라고 말했다. 전보람씨 역시 “할머니는 공주님처럼 우아한 분이셨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삼성공원이다. 02-3010-2265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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