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 비위 맞춰 정상회담 열려 하면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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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내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려야 하며, 당과 청와대 간에 교감이 이뤄진 상태"라고 말했다. 전에도 이런 식의 이 의장 발언은 몇 번 있었으나 정부의 부인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막후교섭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장관들과 여당의 핵심인사들이 '북한 입장을 이해하는'식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남북 간 긴장 완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환영한다. 그러나 정상회담 행사 자체에만 매달려 혹시라도 성사를 위해 북한의 비위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그런 점에서 '북한 핵개발이 일리가 있다'는 노 대통령 발언에 이어 통일부 장관은 물론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 '북한=주적 폐지'발언이 나오지 않았기를 바란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재촉하면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자신의 '몸값'은 올리면서 우리의 '요구사항'은 무시하게 되는 협상의 기본율을 이 정부는 왜 모르는가. 북핵 문제가 부시 2기에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에 무엇을 얻을지에 대해서는 깜깜한데도 회담 자체에 매달린다면 회담 성격 자체에 대한 오해도 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남북 문제, 특히 정상회담 같은 행사는 투명하면서도 초정파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얼마나 많은 잡음을 불러 일으켰는가. '현 정권이 흐트러진 국내 정국을 수습할 방안이 없으니 정상회담에 매달린다'는 항간의 소리도 있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금 계층 간, 세대 간 내부 갈등의 골이 심화돼 가고 있다. 경제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이런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국정의 우선 순위다. 정상회담은 남북이 분명한 합의 목표를 공유한 실질적 접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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