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지식사회에 묻는다 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는 것이 힘' 이라는 유명한 공리가 있다. 근대 경험주의 철학의 창시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인데, 우리에게는 일제 때 '애국계몽운동' 이 표어로 채택된 이래 면학(勉學)의 구호로 자리잡았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식은 곧 권력이 된다.

과연 그 구호대로 우리의 현대사는 '배우면 출세한다' 는 공식을 확립했다. 교육열이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고속성장의 산업화를 이끌어 냈으니 결코 헛구호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배웠다는 이의 대부분은 '곡학아세(曲學阿世)' 이기 십상이요,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는 이에게는 '식자우환(識者憂患)' 을 염려하곤 했으니, 기실 지식이 곧 권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푸코가 역설했던 대로 지식의 소유가 곧 독자적인 권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지식과 권력의 상관성을 말할 때도 엄격히 따져 보면 권력측이 언제나 으뜸패를 쥐고 있게 마련이었다. 도시의 등장에 의해 문자가 발명된 것이나 일정 규모의 집권국가가 성립할 때만이 이른바 '역사' 가 나타날 수 있었다는 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에 지식은 일종의 '원죄' 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그것에는 핏빛으로 물든 비정한 권력의 칼날이 언제나 각인돼 있었다. 우리가 저항적 지식인으로 '사육신' 이나 토머스 베케트, 혹은 갈릴레오를 떠올리지만 이러한 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 인문학이 '치자(治者)의 학문' 이었음을 오히려 확인시켜 줄 뿐이다.

기능적 지식은 아예 지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더러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기한다는 학문적 이상도 사실은 지식이 권력에 직접 봉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정 정도 무마하기 위한 완화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의 비판은 비판의 대안을 가질 수 없기에 항용 영웅적인 비장함을 풍기곤 했다.

근대 이후 지식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근대국가의 통치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국민적 통합을 기반으로 근대국가는 근대사회의 엄청난 동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대학' 을 창안했다. 대학은 이제 지식의 원천으로 다시 태어났고, 국가는 그것에 재정적 지원과 함께 운영의 자율성과 존재의 독립성을, 곧 '국가 안의 국가' 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렇게 했던 것은 그것이 지식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베를린대학(1810)을 효시로 하는 훔볼트류(類)의 대학이념이었다.

이후 구미와 일본에서 대학의 성격이 상당히 변해 19세기말~20세기초에 연구와 교육을 결합시킨 '연구대학' 이 새롭게 생겨나고 20세기 마지막 4반세기에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형' 연구중심대학이 출현했지만, 지식의 공동체라고 하는 대학의 보편적 이념은 여전히 살아 남았다. 대학의 자치와 자유를 파괴한 나치의 경험은 지식의 비판적 기능이 한 사회와 국가의 균형잡힌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웅변했다.

대학은 지식세계에 새로운 조직원리를 도입해 '학과' 를 기본단위로 하고 유사한 학문분야들을 '학부' 로 모았으며, 그것에 독자성과 자율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고도의 전문성에 입각한 독특한 지식편제와 더불어 새로운 지식인이 탄생했다. 이제 이들에게 전문성과 보편성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덕목을 겸비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대학인 사이에 세 개의 위계가 나타났다. 전문성만을 갖춘 기능적 지식인, 양자를 겸비한 비판적 지식인, 전문성의 기반 위에서 변혁운동의 과제를 짊어진 유기적(有機的)지식인이 바로 그것이다. 유기적 지식인이 대학에 존재했던 예가 없지 않았지만, 비판적 지식의 생산이야말로 대학의 존재이유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다. 사회의 제반문제를 전체적인 시야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자세야말로 지적 공동체로서 대학만이 행할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대학의 위상이 확립됐다고 해서 지식의 비판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이 아님을, 특히 미국 대학의 역사적 경험이 잘 보여준다.

19세기에 독일 대학이 대학의 전형이었다면, 오늘날은 미국의 대학들이 그러하다. 그것이 보여주는 지적 수월성(秀越性)은 전세계의 대학들에 혁신을 강요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은 두터운 전문성에 비해 빈약한 비판성을 보여준다. 미국 대학은 마치 몸집은 엄청나게 크지만 두뇌는 턱없이 작은 공룡을 연상시킨다.

중요한 것은 비판성을 약화시킨 것이 국가권력이 아니라 학계의 '미시권력' 이자 '자율권력' 이라는 점이다. '출판 아니면 소멸' 이라는 교수계약제의 현실과 미국 사회 일반의 '반지성주의' 가 대학의 비판적 기능을 왜소화시킨 것이다. 지식의 생산방식에서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근대성' 의 터널을 통과한 이제 누구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지식인임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대학에 유독 특별한 지위를 허용했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대학에 비판적 기능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 사회와 국가를 경영하는데 그것이 가장 '싸게 먹히는'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학은 기업과 더불어 근대세계의 두 주축이면서 그것과는 다른 운영원리가 주어졌던 것이다. 또 대학이 국가에 존립기반을 두면서도 그 직접적인 관할에서 벗어났던 소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에게도 대학은 지식과 지식인의 거소이건만, 우리 대학은 근대대학의 면모도 갖추지 못한 채 미국식의 기업형 연구대학으로의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 지사형 지식인은 적지 않았지만, 전문성을 갖춘 비판적 지식인이 제대로 들어서기도 전에 기능적 지식인이 판을 치는 대학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대학은 대부분이 기업처럼 운영되는가 하면,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율성도 갖추지 못한 학계에 '자율권력' 을 기대하고 또 부여하려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지식사회 위기의 한 요인이 있는 것이다.

지식은 결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가 특정인의 소유물로 더 이상 간주되지 않게 되면서 지식세계는 독자성을 부여받았고 대학은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적인 장치가 됐다. 권력이 곧 지식의 기반이 된 것이다. 보편성을 결여한 대학은 이미 대학이 아니며, 비판적 지식을 결여한 사회와 국가는 비대해진 몸집 때문에 자기통제기능을 상실한 공룡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최갑수교수(서울대 ·서양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