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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TV수신료 징수제 왜 못고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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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매월 2천5백원의 수신료를 내야 한다. 수신료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함께 부과되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낼 때 텔레비전 수신료도 함께 내도록 되어 있다. 이는 수신료의 효율적인 징수를 위해 방송법시행령이 인정하고 있는 수신료 납부방법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떤가.

사례1: 집에 텔레비전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등록말소 신청을 했다. 그런데도 계속 수신료가 고지돼 나오는 바람에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고지서 납부를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전기요금이 체납돼 전력공급이 중단되었다.

사례2: 가게에 TV가 없는데도 전기요금에 수신료가 고지됐고 이를 꼬박꼬박 납부해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한국방송공사측에 항의했더니 고지는 중단하겠지만 그동안 납부했던 수신료를 환불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

사례3: 전기요금 고지서를 살펴보니 월 2천5백원이 아닌 월 5천원의 수신료를 납부해온 것을 알게 됐다. 관계기관에 알아보니 TV가 2대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집 TV 중 한 대는 흑백 TV다. 항의했더니 이미 낸 돈은 돌려줄 수 없다며 다음달에 조정하겠다고 했으나 또다시 5천원이 부과됐다.

이것은 방송위원회의 시청자 불만처리위원회 등에 접수된 사례들이다.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함께 납부하는 지금의 이 방식은 징수의 효율성면에서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은 법적 성격이나 징수 근거, 사용목적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예컨대 돈이 부족해 어느 한쪽만을 납부하고 싶어도 두가지를 모두 미납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수신료 미납에 따른 가산금과 전기료 미납에 따른 연체금이라는 이중부담을 지게 된다.

물론 TV 수신료 납부의무와 병과고지는 방송법상으로 보장돼 있다. 방송법 제64조는 TV 수신기를 소지한 사람은 수신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시행령 제43조 제2항은 수신료를 타 공공요금과 통합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시청자의 편의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잘못 부과된 수신료가 있는데도 집안에 전기공급이 끊길까봐 수신료를 내야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하면 시청자들의 불편을 담보로 한 행정적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중계유선방송업자들까지 이 제도를 불법적으로 흉내내 유선방송요금을 전화요금에 통합해 징수하고 있다.

현재 KBS는 재원의 40%를 수신료에 의존하고 있다. 기본적인 재원의 확보는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근거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행정착오로 부당한 요금을 물게 됐을 경우에도 수신료만을 연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자칫 공영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으로 연결될 소지도 없지 않다.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면 이런 부분에까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정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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