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쿠바에 다녀온 소설가 이호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쿠바, 피델 카스트로 의장 귀하.

저는 한국의 서울에서 지난 1955년부터 소설을 써 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40여년 전 쿠바 혁명이 이뤄졌을 때부터 당신을 존경해 오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 때 20대 말의 저에게 있어서 당신과 쿠바는 아련한 먼 꿈이었으며 지향(志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털어 놓거니와 저는 예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저는 노상 뜨거운 혁명적 낭만성을 보아 왔으며, 당신의 그 인간적인 매력은 지금까지도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

*** 카스트로 의장에 "만나자" 편지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은 소설가 이호철씨가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한 번 만나자" 는 편지를 보냈다.

지난 8월9일 미국을 거쳐 멕시코와 쿠바를 방문하고 지난 4일 귀국한 뒤였다. 여행 중 4일간의 쿠바 방문에서 그는 그곳의 작가회의 사람들과 만나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주선하겠다" 는 확답을 받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멕시코에서 열린 이호철 소설 독회 모임에 참가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체게바라와 카스트로,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쿠바로 내달렸다.

왜 쿠바였을까.

그는 "오로지 문학하는 사람의 눈으로 쿠바를 그려왔고, 지금 그 눈으로 보고 온 것" 이라고 했다. 소설가의 눈, 그것은 혁명의 참혹한 현실보다 이상향을 좇는 혁명의 낭만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눈일테다.

"쿠바 사람들, 가난해. 주 산업인 사탕수수도 사양산업이래. 거리엔 고물차가 다니고 딱 우리 50년대 거리풍경이야. 그런데 웬일일까. 그 저변으로 깊이, 굳건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미래를 향한 건강한 믿음, 긍지, 낙관이 보이는 거야. "

그러면서 지난 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이런 마음에 불을 당겼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환영받는 사람들' 이란 뜻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그들이 노래하는 풍경을 담은 이 기록영화에 비친 쿠바인의 삶은 이씨의 전언에 딱 들어맞는 모양새였다.

칠순, 심지어 구순을 넘기고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노인들의 눈가엔 눈물이 맺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그득했다. 시대를 버텨낸 낙관의 힘이 보이곤 했다.

이씨는 이를 두고 "피델 카스트로의 자국이 쿠바 사람들 삶에 맺힌 것"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쿠바 사람들의 속내를 알 수 있게 됐다는 일화를 한토막 소개했다.

"호텔에 3일간 묵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 맘 속에 문학적인게 가득해 보였어. 아침에 나갔다 들어오면 방청소가 돼 있잖아. 그런데 침대보가 매일 다르게 정돈돼 있는거야. 처음에 하트 모양으로 침대보를 개놨더라구. 참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다음날은 침대보로 오리를 만들어 놨어. 그 위에 마누라 모자까지 씌워놓고 말이야. 하하. "

그가 보는 쿠바는 사실 저 멀리 카리브해에 존재하는 외딴 섬나라 쿠바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 그곳 사람들은 배를 곯고 몇 달러를 벌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지친 일상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살아온 내력과 그의 작품세계를 일관되게 관통했던 문제를 떠올린다면 어딘가 돌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고 있는 그가 이해되기도 한다.

고향인 원산에서 학교를 다니다 6.25때 인민군에 동원된 그는 이내 포로가 되었다 풀려났다. 그 뒤 단신으로 월남한 그에게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산의 체험은 그의 문학의 일관된 화두였다.

하루 아침에 부산 부둣가에 떨어진 이북 출신 네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등단작 '탈향' 에서 올해 펴낸 『이산타령 친족타령』에 이르기까지 그는 온 몸으로 분단과 이산을 밀어붙이며 살아가야했다.

그리고 지난해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돼 누이동생을 만난 그는 "우리 이제 울지 말자" 며 목놓아 울었고, 『이산타령 친족타령』에선 이념과 체제를 내세우는 현실에 대한 불신과 함께 생생한 삶의 현장에 대한 애정만을 되새길 수 있었다. 바로 그것, 삶의 현장의 생생함이 남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쿠바는 이 노소설가에게 매력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 생생한 삶의 현장 작품화 계획

"카스트로와 만나 이런 변화의 시대에 공산주의와 쿠바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꼭 듣고 싶어. 그리고 남북관계 푸는 데 있어 쿠바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싶고. "

쿠바에 앞서 방문한 멕시코에서 이씨는 놀라운 환대를 받았다. 그의 소설 『소시민』이 지난해 스페인어로 번역.출간된 뒤 멕시코의 문학 담당 교수와 언론에서 관심을 끈 직후였다. 그는 현지 라디오에도 출연해 40분간 대담을 했고 멕시코의 유력지들이 그에 관한 기사를 전면에 걸쳐 싣기도 했다.

"이호철은 멕시코의 작가 호세 레부엘따스와 견줄만하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투사이며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 (멕시코 엘 인포마도르 기사 중)

우상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