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쌀 협상 어떻게 돼가나] 미국 "수입 쌀 75%시중 판매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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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쌀 가운데 얼마를 시중에서 판매할 지가 쌀 협상 막판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또 완전개방을 미루는 대가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MMA)이 소비량(513만t)의 7.5%(38만t)보다 많으면 차라리 쌀 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것이 낫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제시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소비량의 4%(20만5000t)를 수입하고 있으며, 수입쌀의 시판은 금지하고 있다.

17일 농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10년 후 기준으로 수입쌀의 75%를 반드시 할인점.수퍼마켓 등에서 일반 소비용으로 팔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전체 수입 물량을 얼마나 늘릴지, 완전 개방(관세화)을 얼마나 더 미룰지 등 다른 쟁점에선 중국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던 미국의 강경한 시판 요구에 정부 협상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다음주 미국과 7차 협상을 한다.

중국은 수입쌀 중 30%를 시판하라고 제안했다.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수입쌀 시판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시판 비율에 대한 수출국들의 요구 수준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통령자문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쌀 협상 토론회에 서진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 쌀값이나 환율이 급변할 위험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MMA 물량이 소비량의 7.1~7.5%를 넘으면 완전 개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 분석은 정부가 최종적인 판단을 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7%의 MMA를 제시한 반면 미국은 8%, 중국은 8.9%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쌀협상과 대책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송유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외국 쌀과 경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관세화 유예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고 과감한 농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진근 충북대 교수는 "쌀이 남아 도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조건 소득 보전을 더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저자세로 일관하는 바람에 상대국을 설득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소득 보전 대책은 생산비 상승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농가 소득을 보전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관세화하면 시장논리에 의해 농업과 농촌은 자생력을 잃고 강제로 해체될 것"이라며 "정치권이 농업에 개입해 수매가를 관리하지 않았다면 농업은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단체 회원들은 토론회장에서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김영훈 기자

[뉴스분석] 중국은 수입량, 미국은 시판에 초점…물량 풀면 시중 쌀값 하락 불보듯

지난 5월 쌀협상이 시작된 후 줄곧 온건한 태도를 보여온 미국이 협상 시한을 40여일 앞두고 쌀 시판 문제에서 유독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실리를 철저히 챙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수입가를 기준으로 한 미국 쌀값은 인건비와 운송료 부담으로 중국보다 36% 비싸다. 따라서 주로 식품 가공용인 저가 쌀시장에선 중국 쌀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반면 소비자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급 쌀이 많이 팔리는 가정용 쌀시장에서 중국보다 경쟁력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전체 수입량 면에선 한국 측 입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도 쌀 시판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가격경쟁력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시판 물량보다는 가공용을 포함한 전체 수입량을 더 늘리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쌀 수입이 국내 쌀 농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체 수입량보다는 얼마 정도가 시장에 풀리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쌀 소비 감소로 연간 쌀 재고가 600만섬에 이르기 때문에 수입 쌀의 시판이 늘어나면 시중 쌀 가격이 크게 내릴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완전 개방을 미루려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국내 농업이 연착륙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인데, 시장 영향을 줄일 수 없다면 완전 개방을 미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그만큼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협상 시한에 쫓기거나 농민표를 의식해 명분보다 실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협상의 기본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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