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어 포르투갈 … 유로존에 번지는 ‘불신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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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노란불이 켜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교차로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투기 세력은 교차로를 헤집고 다닐 게 뻔하다. 유로존의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고비를 못 넘으면 유로존은 와해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시장은 그리스·포르투갈을 통해 유로존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교사들이 27일(현지시간) 그리스 국회의사당 앞에서 쇠사슬을 손목에 감은 채 정부의 재정 감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아테네 AP=연합뉴스]

◆재정 위기의 먹구름=“그리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27일 “채권 시장의 ‘자경단’이 이미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영국·아일랜드·아이슬란드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재정적자 규모가 큰 국가다.

최근 적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각국은 파산 위기의 은행을 구하고, 경기를 살리느라 지출을 늘렸다.

재정 상태가 괜찮은 나라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원래 엉망이었던 곳은 바로 탈이 났다. 재정난에 빠진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중 스페인을 빼곤 원래부터 문제아였다.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구제금융 규모(3736억 달러)가 컸다. 루비니 교수는 ‘자경단’이 결국은 일본과 미국을 노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왜 남유럽인가= 그리스는 과거부터 일부 부자 가문을 중심으로 경제가 굴러갔다. 이 때문에 서유럽에 비해 남유럽은 중산층이 얇다. 버팀목이 없어 위기에 취약한 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총리는 최근 50년간 파판드레우 가문과 카라만리스 가문이 번갈아 해왔다. 능력에 따른 계층 이동이 어려워서 활기가 떨어지고, 효율도 낮다는 얘기다.

부패 역시 문제다. ‘작은 봉투’라는 뜻의 파겔라키는 그리스를 상징하는 용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촌지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PIGS는 모두 부패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브루킹스연구소는 “그리스의 경우 부패로 인한 손실이 최소 GDP의 8%”라고 분석했다. 적자를 흑자로 돌리고도 남았을 수준이다.

◆유로의 위기= 유로존 국가들은 서로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유로존 국가는 국가부채를 GDP의 60%, 재정적자는 GDP의 3% 이하로 낮춰야 한다. 그런데 독일·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이 규정을 심심찮게 어겼다. 독일은 그리스를, 그리스는 독일을 믿지 못한다.

유로 체제 자체가 위기의 원인이란 지적도 늘어나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존에 들어오면서 자산 거품이 생겼다. 전통적인 고금리 국가에 저금리로 돈이 풀렸다. 부동산 가격은 뛰었고, 복지 예산은 확 늘었다. 반면 높은 유로화 가치 때문에 이들 나라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을 잡겠다는 유로의 의지는 ‘멋진 꿈’에 불과하다”며 “5~15년 내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때가 2004년, 그러니까 이제 6년이 흘렀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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