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외국과 달리 우리만 콜금리 내렸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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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11일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은 정반대의 금리정책을 폈어요. 미국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반면 한국은행은 같은 폭만큼 금리를 내렸답니다. 그동안 유럽 각국과 중국 등이 금리를 올리는 가운데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지난 8월에 이어 두 번째 금리를 낮췄습니다. 이를 두고 국제금융시장에선 왜 한국만 거꾸로 가는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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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 정반대로 나온 것은 양국의 경제 상황이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0년 불황 끝에 최근 일자리가 빠르게 늘어나는 등 경기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극심한 투자.소비 부진으로 경기가 갈수록 얼어붙고 있죠. 이 때문에 미국은 경기가 너무 빨리 뜨거워지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고, 한은은 경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렸습니다. 금리는 돈 값인데, 돈 값이 오르면 국민의 씀씀이가 줄어들 것이고 반대로 내리면 씀씀이가 늘어나겠죠.

문제는 금리가 경기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돈 값은 여러 경로를 통해 물가.환율.국제수지 등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 때문에 금리정책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하죠.

우선 현재 금리가 4%인데 3%로 낮추자면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야 합니다. 3% 이상의 금리로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빌려줘야 금리가 3%로 떨어지기 때문이죠.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사람들의 씀씀이가 늘어납니다. 그럼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커지겠죠.

따라서 금리 인하가 씀씀이를 늘려 경기를 부추기는 힘이 더 크냐, 아니면 물가를 밀어올리는 힘이 더 크냐에 따라 정책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론 경기부양 효과가 크고, 장기적으론 물가를 올리는 힘이 더 크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실증분석 결과입니다.

금리는 자본 유출입에도 영향을 줍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똑같이 4%인데 한국만 금리를 3%로 내렸다고 가정해보죠. 돈 가진 사람 입장에선 한국의 은행에 돈을 맡겨두는 것보다 미국의 은행에 예금하는 게 유리할 겁니다.

미국으로 예금을 옮기려면 국내 은행에 있는 돈을 찾은 뒤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환전해 송금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선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겠죠. 그럼 달러 값이 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1000원만 있으면 1달러를 살 수 있었는데 1200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달러당 1000원이 1200원이 될 때 우리는 '환율이 올랐다', 다시 말해 '달러 값이 올랐다(원화 값은 떨어졌다)'고 합니다. 금리 인하는 이처럼 환율을 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율이 오르면 시장에선 다시 환율을 떨어뜨리려는 반작용이 생깁니다. 1달러짜리를 팔면 1000원을 얻던 수출업자는 환율이 1200원으로 오를 경우 가만히 앉아서 200원을 더 벌게 됩니다. 수입업자는 반대죠. 따라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게 돼 국제수지 흑자가 늘어납니다.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고 쓰기는 적게 쓰니 국내 외환시장엔 달러가 넘쳐나겠죠.

이렇게 금리 인하는 자본유출을 불러일으켜 환율을 올리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론 환율 상승으로 국제수지 흑자가 늘어 다시 환율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결과적으론 어느 힘이 더 큰가에 따라 환율의 방향이 정해지겠죠.

최근 미국은 금리를 올리고, 한국은 금리를 낮췄는데도 달러 값이 떨어지고 원화 값은 오른 것도 두 가지 힘의 크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앞서 본대로 미국은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우선은 달러 값이 올라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적자(쌍둥이 적자)가 너무 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 값 상승요인을 상쇄해버렸습니다. 미국은 경상수지와 재정에서 적자가 나면 이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찍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국제금융시장에는 달러가 흔해지겠죠. 달러가 흔해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달러를 사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자연히 달러 값은 떨어지지요.

반대로 한국은 금리를 낮췄기 때문에 원화 값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도 최근 원화 값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레 올랐습니다. 이 역시 금리 인하로 인한 원화 값 하락요인을 세자릿수 경상수지 흑자라는 원화 값 상승요인이 압도해버린 겁니다.

여기다 한국 정부의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도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경상수지 흑자가 크면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이 하락(달러 값 하락)해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시장에서 달러를 마구 사들여 환율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았습니다.

정부로선 최근 우리나라 경기를 홀로 떠받치고 있는 수출이 환율 하락으로 위축되는 걸 막으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치다 보니 시장에 '달러 사재기' 현상이 생겼습니다. 정부를 믿고 달러를 마구 사쟀던 세력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 때문에 세계적인 달러 약세 현상이 벌어지자 이번엔 한꺼번에 달러 팔자에 나섰습니다. 이 때문에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국내 외환시장에는 달러 사자보다 팔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달러 값은 폭락(환율 하락)했습니다. 무리한 정부의 개입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시장기능을 마비시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교훈을 보여줬습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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