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밖의 일 모르는 태풍의 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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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태풍의 핵은 밖의 일을 모르다가 태풍이 휩쓴 뒤 알게 된다. 권력의 핵은 청와대인데 정작 긴장해야 할 곳에서 조용하다는 말을 듣는다. " (한화갑 최고위원),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가 정권의 도덕성 추락으로 분노.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 (김근태 최고위원).

의혹의 끝이 어딘지 모를 '이용호 부패 스캔들' 속에서 나온 민주당 두 최고위원의 발언은 정권 관리의 위기감과 관련해 집권 세력 내 급속히 퍼져가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진다.

두 사람은 민주당 내 차기 대선 경쟁대열에 나선 인물이다. 때문에 그 발언들은 차기 이미지 관리, 그들과 사이가 벌어진 동교동계 구파쪽을 의식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의 여론 흐름을 정리, 소화한 것이라고 할 만하다.

이용호 게이트를 놓고 국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대로 '마구 해먹는' 데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허탈해 한다. 민심 불만의 이런 심각성을 집권층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

그런 민심의 낙담과 불만 이면에는 권력 주변을 보호하려는 방어적이고, 진상규명에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태도가 있다. 신승남 검찰총장 거취의 경우, 이용호씨에게서 거액을 받은 동생 문제로 그만두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신판 연좌제(緣坐制)라는 반박이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李씨가 愼총장의 존재를 보고 동생에게 돈을 준 것이라는 상식에 바탕을 둔 여론의 의혹은 두텁게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愼총장 문제 거론 자체를 정권 흔들기라고 일축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 거리가 멀다.

"사건 내막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을 경우, 나는 권위주의 정권 때 했던 것처럼 투쟁하겠다" 는 金최고위원의 비장함은 권력 내부에서 드러나는 사태인식의 안이함에 대한 자체 경고라고 본다.

이용호 게이트는 권력형 비리의혹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사건 전모를 파헤치려는 정권 차원의 특단의 의지가 투사(投射)되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사의 경험으로 미뤄 성난 '민심 이반(離反)' 과 급속한 레임덕(권력누수)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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