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일본근대철학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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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20세기 근대화과정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을 이해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철학' '논리' '과학' '윤리' 등 대부분의 학술용어는 일본이 서양 문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자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편리하게 자위하기 전에 동서 문명 교류과정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갈등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고민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간 『일본근대철학사』는 바로 그 고민에 대한 간접 체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일본 철학' 의 형성과정에 초점을 맞춘 신간이지만, 특별히 철학적 내용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근대와 철학 그리고 역사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19세기~20세기 일본문화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근대화 초기의 일본 지식인들은 서양의 과학과 철학의 실용성에 주목했고, 그것은 근대 일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책의 대표적 집필자인 미야카와 도루 전 일본외국어대학 교수는 "니시 아마네(1829~1897)에 의한 서구 근대 철학의 소개에서 시작된 일본의 철학계는 니시다 기타로(1870~1945)의 단계에서 비로소 철학의 입장에서 해답을 내게 된다" 고 진단한다.

니시다 기타로의 철학이 "철학의 입장에서 일본적 인생의 의미를 물은 근대 일본 최초의 철학" 이라는 것이다.

서구철학을 최초로 일본에 본격 소개한 니시 아마네가 활동하는 시기엔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열기가 지배적이었다.

니시 아마네는 네덜란드로 유학가기 직전 "(서양의)필로소피의 학문은 성명지리(性命之理)를 말한 정이천과 주자보다도 나으며, 경제의 대본을 세움은 왕정보다 나으며, 서양의 제도 문물은 요순시대의 문물제도보다 뛰어나다" 고 자신의 서양관을 피력한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의 전반적 서구화론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이러한 자세는 일본이 아시아의 극동을 넘어 서구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니시다 기타로는 일본에서 서양철학을 동양의 정신적 전통에 동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니시다가 고민한 것은 근대적 개인주의가 필연적으로 당면할 수밖에 없는 독아론(獨我論)적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는 선(禪)체험과 동양적 미학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물론 그의 해답은 "보편을 가장한 것일 뿐, 스스로를 진실로 보편에까지 드높였다고 할 수는 없다" 고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우리로선 '학문과 삶의 연결 가능성' 을 모색하며 자립적 철학을 만들어가려 했던 그 철학함의 자세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런 니시다가 말년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자 군국주의를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점이다. 그래서 니시다와 다른 관점에서 일본의 사상체계를 세우려 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군국주의 비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마루야마의 『일본정치사상사』(통나무)를 번역한 김석근 연세대 정외과 BK21교수는 "최근 몇년간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 니시다의 철학이 부각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고 말한다.

허우성(경희대 철학)교수가 작년에 펴낸 『근대 일본의 두 얼굴-니시다 철학』(문학과지성사)도 근대화의 성공 뒤편에 제국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 있었음을 니시다 철학을 통해 상징적으로 갈파한 책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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