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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거울아, 거울아'…뛰어난 관찰로 삶의허구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9면

21세기 한국 소설의 주역이 될 새로운 작가를 뽑기 위해 우리는 우선 작품의 완성도와 장래의 가능성과 감수성의 참신성을 고려하기로 하고 예심을 거쳐 넘어온 15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었다.

다양한 소재와 다채로운 기법의 작품들을 비교해 우열을 가리는 일이 꼭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론이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5편의 작품을 선정해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5편의 작품은 오세찬씨의 '가담항어' , 송청원씨의 '자웅동체' , 강헌씨의 '그는 나를 모른다' , 나찬경씨의 '편지 도둑' , 그리고 손나경씨의 '거울아, 거울아' 등이다.

'가담항어' 는 '윤씨 일대기' 라는 과거의 기록에서 기존의 학설을 뒤집을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을 대화체로 구성하고 있는 좋은 작품이지만,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데 성공하고 있는 젊은 역사학도가 발문이 빠져버린 원문의 훼손을 알고도 자신의 스승의 행위에 대한 학문적 정직성과 인간적 묵인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고통을 보다 진지하고 치밀하게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것은 작자가 과거의 사실의 규명에 성공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현재의 문제로 만드는 데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웅동체' 는 캐나다에서 취업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외국에서의 삶의 고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회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험 결과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삶에는 회사 동료로서 편집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스코트와, 자신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동거하는 다른 여성과 동성애에 빠져버린 시마라는 여성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는 조기 유학 온 초등학생 조카 등이 끼어 들어 있으나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한 데다가 스코트의 모형 비행기를 날리며 자신이 달팽이 같은 '자웅동체' 로 변신하겠다는 결말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되었다.

'그는 나를 모른다' 는 회사원의 일상 생활 가운데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그린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자신의 자동차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택시에서 합승한 여자 승객이 자신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며 회사 주차장에 없어졌던 차를 다시 발견한다는 등의 일상적 이야기를 '시스템의 오류' 라든가 '중복 접속' 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한 작가의 상상력은 좀더 매끈하고 경쾌한 문체로 다루는 능력만 보인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편지 도둑' 은 우편물의 구인란에서 직장을 찾던 실업자가 자신의 아파트에 배달되는 다른 사람의 우편물을 훔쳐봄으로써 아파트 주민들의 감추어진 사생활을 엿보게 된다.

현실 속에 융합되지 못한 소외된 사람의 전형을 이루는 엿보기가 주인공을 더욱 소외시킨다는 현상을 예리하게 간파해서 재미있게 제시할 줄 아는 작가적인 역량을 드러낸 작품이다.

특히 이웃집 남자에게 배달된 사랑의 편지가 사실은 이웃집 남자 자신이 쓴 편지이며 주인공의 편지 훔쳐보기를 간파한 남자가 마지막에는 직접 주인공에게 '오늘도 너에게 편지를 쓴다' 고 한 반전은 단연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거울아, 거울아' 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주인공이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야기로서 목욕탕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관찰을 통해 삶의 허구적인 모습과 주인공의 심리적인 추이를 그리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과도한 식욕으로 뚱뚱했던 주인공이 먹고 토함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유지하는 고통스런 삶과 목욕탕의 거울 속에서 발견한 단발머리 얼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러한 현실을 단단하고 매끄러운 문체로 묘사하는 이 사람의 능력은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편지 도둑' 과 '거울아, 거울아' 두 편을 놓고 우리는 장시간의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편지 도둑' 의 이야기의 구성이나 재미에 비해 '거울아, 거울아' 의 내면적 관찰의 깊이와 단단한 문장력이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하게 하여 '거울아, 거울아' 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치수.현기영.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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