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스타 되려면 성 상납하라는 연예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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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순위는 연예인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스타가 될 꿈에 부풀어 연예계 언저리를 기웃거린다. 수도권에서만 220여 개의 연기학원에서 배출되는 지망생이 연간 4만8000여 명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연극영화과 등 대학의 관련 학과에 다니는 학생 수도 3만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스타는커녕 이들 중 데뷔의 기회를 잡는 이조차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같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불균형이 갖가지 인권 침해를 낳는 근본 원인이다. 인기 그룹 ‘동방신기’ 멤버들과 대형 기획사 SM간 분쟁을 계기로 불거진 ‘노예계약’ 관행이 대표적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고(故) 장자연씨 사태로 드러났듯 술 접대·성 상납 요구의 병폐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도 모 여성 탤런트가 미성년자 시절 기획사 이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방송 도중 고백해 파문이 일었다.

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여성 연기자 및 지망생 대상 조사 결과는 그간 일부의 폭로나 소문으로 나돌던 성 관련 인권 침해 실태가 명백히 밝혀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 연기자 열 명 중 6명이 성 상납 요구를 받았고 3명은 성 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력 인사들로부터 소위 ‘스폰서’ 제안을 받은 경우도 열 명 중 5명 이상이었다.

‘좁은 문’을 뚫어야 하는 신인 연예인이나 지망생 입장에서 이런 제안을 뿌리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식적 오디션보다 방송 관계자나 광고주 등과의 비공식적 만남이 캐스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풍토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사 대상자 중 절반가량은 성 상납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에서 불이익을 겪었다고 답했다.

한국 대중문화의 낯부끄러운 이면(裏面)이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자면 낙후된 연예산업의 시스템을 확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국처럼 일정 자격을 갖춘 사업자만 기획사를 운영토록 하고 공정한 오디션 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연예계 전반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하부구조가 선진화되지 않는다면 한류의 지속적 성장도 기약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