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주재원 긴급 전화 인터뷰] 파키스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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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보복 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스라엘 등 중동 10개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건설.무역.전자업체 지사장 및 현지 무역관장 10여명을 16~17일 긴급 전화 인터뷰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파키스탄에선 버스를 이용한 비상탈출 계획까지 세우는 등 긴박한 분위기이나 다른 중동 국가들은 '서울보다 더 평온하다' 고 이들은 전했다. 중동 현지 상황 인터뷰 내용을 나라별로 요약한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시내에는 승마 경찰이 거리를 돌고 군 병력도 증강되는 등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삼성물산 고준 지사장은 "가족들은 17일 새벽 서울로 떠났으며 나도 19일 비행기편을 구해 놓았다" 면서 "교민 중 일부는 비행기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고 말했다.

高지사장은 "파키스탄에는 탈레반 지지세력들이 있고,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 라며 "외국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보복공격 이후 있을지 모를 불특정 이방인에 대한 과격 이슬람교도들의 테러" 라고 전했다.

그는 파키스탄 군인들이 거리 곳곳을 지키고 있지만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지 미지수며, 그래서 외국인들이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LG전자 전재유 지사장은 "16일 저녁 총영사관에 교민과 지.상사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면서 "본사 지시에 따라 18일 아침 비행기편으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출발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이종환 카라치 무역관장은 "미쓰비시 등 일본계 기업들은 가족들이 모두 철수했으며 IBM 등 미국계 기업들도 필수요원을 제외하고는 다 떠났다" 고 말했다.

李관장은 "외국인들의 외화예금 인출 러시가 벌어지는 가운데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3백여명의 아프간 국적자들에게는 은행계좌 동결조치가 취해졌다" 고 전했다.

그는 "아프간 국경 도시인 라호르에 사는 1백여명의 교민들은 항공편을 구입하지 못할 경우 대우가 현지에서 운영 중인 고속버스를 이용해 인도쪽으로 대피하는 비상책까지 마련했다" 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차분해야 하며 성급하게 철수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백50여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해 피혁봉재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제이디무역 김대남 사장은 "8년간 카라치에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한 위기상황도 있었으며, 지금 대피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金사장은 "지.상사 직원들이 움직이니까 교민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면서 "파키스탄인들이 한국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는 대비해야겠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면서 "나는 한국인 중 제일 마지막으로 떠날 것이며 회사가 필요로 하면 끝까지 남겠다" 고 말했다.

민병관.박방주.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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