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지갑' 안 되게 안전판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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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연기금의 주식투자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KT.포스코 등의 경영권 방어에 연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이를 공식 재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 제출된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여부는 딱 잘라 결론짓기 힘든 문제다. 경제 논리나 현실적으로는 허용이 불가피하다. 국민연금 등의 여유 자금은 현재도 136조원이나 되며,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백조원에 이른다. 이 돈이 지금처럼 안전성만 따져 채권에 투자할 경우 국내시장 규모로 볼 때 투자할 곳이 없게 된다. 그러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감내하며 은행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는데, 이도 가입자에게 불리하다. 부동산도 마땅치 않다. 대안은 주식뿐이란 얘기다.

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정부가 과거처럼 계속 연기금을 '주머닛돈'처럼 여겨 주가 부양 등에 동원할 경우 원금마저 까먹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돈을 '한국판 뉴딜'에 쓰겠다는 것을 보면 가능성은 농후하다. 사회보장제도도 미미한데 연금마저 주식투자로 날릴 경우 그 피해는 국민에게 직접 돌아간다. 많은 전문가나 야당이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계속 틀어막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연기금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물꼬를 터주는 게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몇 가지 안전장치는 꼭 있어야 한다. 우선 주식이 전체 자산의 일정 수준을 못 넘게 하는 등 위험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나 정치권이 장난치지 못하게 연기금의 운용과 관리, 인사에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연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투명성 강화도 선결과제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연기금의 일부 주식투자를 허용하더라도, 그로 인해 국민의 노후가 불안하게 되는 일이 결코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