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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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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의 인사로 '세이 헬로, 세이 굿바이'란 말이 있다. 한마디로 '만나자 이별'이란 뜻이다. '살아있으면 또 보자'고 돌아서는 그들의 쌀쌀함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싸움터의 생리 때문이다.

이렇듯 목숨을 내놓고 분쟁 현장을 뛰는 기자를 우리는 흔히 종군기자(從軍記者)라 부른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군을 따르는 기자'가 되고 만다. 언론보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따진다면 군대에 복속당한 기자란 이 단어는 옳지 않다. 더구나 종군기자란 말을 쓰는 나라는 일본뿐이고 중국이 쑤이쥔지저(隨軍記者)라 부르는 정도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 또는 전선기자(戰線記者)라 한다.

1988년 버마학생민주전선을 취재하며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된 정문태씨는 최근 펴낸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 취재 16년의 기록'에서 종군기자 대신 '전선기자' 또는 '전쟁기자'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다며 이런 설명을 달았다. "군대가 벌이는 전쟁으로부터 언론이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효과적인 감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취재기자를 부르는 호칭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 기록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전선기자를 '군무원'이라 부르며 전시 언론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보도자문국을 설치해 종군기자들을 직접 관리하고 검열하며 냉전의 나팔수로 내몰았다. 제2차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은 아예 '임베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전쟁 취재기자들을 모아 사전 교육을 하고 적당한 곳에 배치해 언론을 관리하는 이'군.언 동침'제도는 '미군은 정의롭고 미군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미국 현대전의 신화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지난 며칠 새 신문과 방송은 미군의 이라크 팔루자 점령 소식을 전해주었다. 주검이 썩어가는 유령의 도시 팔루자의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그 많던 전선기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국제기자연맹은 올해 세계 각지에서 취재활동을 하다 사고나 테러 등으로 숨진 언론인이 1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04년은 94년 115명에 이어 언론인이 피를 가장 많이 흘린 해로 그 주원인은 이라크전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쳐들어간 뒤 지금까지 모두 62명의 전선기자가 죽었다. 전선기자가 사라지는 날을 보고 싶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 끝나는 날.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