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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 박완서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송구스러워요. 저는 체질적으로 나한테 내린 평가가 조금 모자라는 듯한 게 편해요. 황순원 선생님에 대한 경외를 염두에 두면, 넘치는 건 불편하죠.

상이란 건 격려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잘 써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신인 시절을 벗어나 상을 받을 때는 중요한 작가로 새롭게 데뷔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격려나 칭찬이란 말은 사실 나이먹은 사람한테 이상하죠. 솔직히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아하기도 그렇고 불편한 걸 나타내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고…. "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 로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박완서씨의 당선 소감 제 일성(一聲)은 "송구스럽다" 였다.

그가 지난해로 문단 데뷔 30년에 70의 생을 살아온 노작가임을 떠올린다면 대놓고 자신을 돋보이게 할 언사를 써도 무례와는 거리가 멀었을 터이지만 朴씨는 이제까지 보여준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그런 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의 두 사촌 자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당선작이, 체면 유지에 목매다는 언니의 태도가 실상 파릇파릇한 생명의 삶을 겪어보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도 직설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없는 길을 만들어 힘없는 독자들을 주눅들게 하는 방식은 절대로 아니다.

그의 소설적 힘은 바로 술술 읽히는 이야기의 힘에 다름아니다. 읽게 하는 힘은 곧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강렬함에서 기인한 것이며, 이런 강렬함은 앎에 의해 구축된 삶이 아니라 삶에 의해 풍부해진 앎에서 시작함을 박완서의 소설은 증명하고 있다.

"소설은 우리가 읽었을 때 끄는 맛, 즉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재미 중엔 여러가지가 있지 않겠어요. 요즘은 확 끄는 오락적인 게 승해서 걱정이에요. 우리가 재미라고 생각한 것 중에는 고통도 있어요.

자신을 돌이켜본다거나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죠. 마음보다 깊은 속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얄팍한 행복에 빠졌던 자기에 대한 혐오도 생기고, 돌이켜보고 하다 보면 궁극에는 반성이라고 할까.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 소설이 많은 독자와 만나길 원하는 거죠. "

단순히 감각적 몰입을 통한 재미로 치자면 소설이 시청각을 공히 자극하는 영상매체에 뒤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재미야 자기 삶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그저 잊기 위해 허비하는 시간일 뿐이라는 뜻일테다. 바꿔 말하면 '재미의 극치는 바로 깨달음' 이란 만고불변의 진리를 가르치는 데에 소설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나목(裸木)' 으로 마흔의 나이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朴씨는 능숙한 이야기꾼으로서의 기질을 발휘하며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증언해왔다.

여성의 경험과 욕망을 여성의 언어로 드러내 여성주의적 소설의 전환점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엄마의 말뚝』, 전쟁의 참혹함을 담아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련함을 그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노인 문제를 다룬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음험한 욕망을 고발한 『아주 오래된 농담』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적 관심은 당대의 삶의 반경에서 한치도 이탈해 있지 않았다.

"체험했던 전쟁에 한이 맺혀서. 그것을 봤으니까 증언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던 거죠. 나에게 겹친 우연한 악운을 떠올리며, 왜 나에게 닥쳤을까를 고민하며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나온 작품에 대해 작가가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읽혀져야 해요. "

독자와의 행복한 만남을 염원하는 소설가 본연의 자세에선 71세란 나이, 탈성화(脫性化)된 노인의 이미지는 오간 데 없고 생의 욕망과 충만한 생명력의 소녀다움마저 묻어나는 듯하다. 육체의 미끈함을 바탕으로 불가능과 가능을 가늠하는 세태는 朴씨의 존재만으로도 반증 가능한 것일테다.

"30년 넘게 하다 보니 장편이란 그릇에 담아야 할지 단편이나 중편이란 그릇에 어울릴지 알게 됐어요. 쓰고자 하는 것이 없다면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 아니겠어요. 한 서너편 가량 생각하고 있는 게 있지만 말하긴 그래요. 김샌다고 할까요. 가려는 길과 뜻하지 않게 어긋나게 된 작품도 많았지요. "

우상균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박완서 약력>

▶1931년 경기도 개풍군 출생

▶70년 『나목(裸木)』으로 등단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도시의 흉년』『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미망』『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 등.

▶소설집 『도둑맞은 가난』『엄마의 말뚝』『저문 날의 삽화』『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

▶이상문학상.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대산문학상.중앙문화대상.만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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