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비단→건강식품·약' 으로 탈바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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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비단에서 건강으로' .

실크의 대명사 누에가 건강증진 식품과 약품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 시판에 나선 한국형 비아그라인 누에그라를 비롯, 당뇨와 암치료제의 원료물질로 누에가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에가 어떻게 건강에 도움을 주는지 분야별로 짚어본다.

◇ 성기능 향상= '누에나방이 양사(陽事)를 강하게 하고 정기(精氣)를 더해주며 음도(陰道)를 강하게 한다' 는 동의보감의 기록이 누에를 성기능향상제로 활용하게 된 계기. 누에그라는 수컷 누에나방의 번데기 엑기스에 가시오가피.오미자.복분자 등 천연 한방제제를 첨가한 제품. 지금까지 걸림돌은 수컷만 골라내 대량 번식시키는 문제였다.

농촌진흥청 잠사곤충부 유강선박사팀은 고치의 색깔을 통해교미하지 않은 수컷만 손쉽게 골라낼 수 있는 품종을 개량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개발팀 일원인 부경대 생화학교실 최진호 교수는 "쥐를 대상으로 누에그라를 먹여본 결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32.8%, 정자 숫자를 41.4%, 정자의 운동지구력을 60% 향상시켰다" 고 말했다.

부작용은 거의 없으며 하루 세차례 10일 정도 복용하면 발기부전 및 정력증진의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생산 및 판매를 맡고 있는 근화제약 관계자의 주장이다.

비아그라처럼 즉각적인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흠. 선릉탑비뇨기과 하태준 원장은 "누에그라는 비아그라와 달리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과 부작용을 검증하는 임상시험 절차를 밟지 않은 만큼 지나친 기대는 금물" 이라고 지적했다. 약품이 아닌 건강보조 식품이므로 발기부전 환자의 치료제로 남용해선 곤란하다는 것.

◇ 당뇨=누에 번데기와 뽕잎이 소갈증(당뇨)에 효험이 있다는 고(古)의서의 기록을 토대로 누에를 당뇨 치료제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누에분말에서 추출해낸 데옥시노지리마이신이 대표적 사례다. 농촌진흥청 유강선 박사와 삼성서울병원 내과 김광원 교수팀이 공동으로 올해초 특허를 출원한 데옥시노지리마이신은 장에서 포도당 흡수를 억제해 혈당을 떨어뜨린다는 것.

金교수는 "동물실험 결과 아카보스 등 기존 당뇨 치료제와 비슷한 수준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확인됐다" 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절차까지 마친다면 누에를 이용한 최초의 신약이 탄생하는 셈이다.

◇ 암=누에는 암치료제의 원료로도 활용된다. 누에똥(잠분)에서 추출되는 포르피린이 대표적 사례. 포르피린은 빛을 흡수하는 광과민 물질.

암환자에게 누에똥에서 추출한 포르피린은 주사한 뒤 외부에서 빛을 쪼여주면 암세포에만 침착된 포르피린이 빛을 흡수해 암세포를 괴사시킨다는 것. 칼을 대지 않고 정상세포는 그대로 둔 채 암세포만 죽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아직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않아 충남대병원.순천향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 폐암과 위암 등에 대해 임상시험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때 사용하는 광과민 물질의 비용이 비싸다는 것. 농촌진흥청 유강선 박사는 "지금까진 주로 돼지피에서 추출한 수입산 헤마토포르피린을 광과민물질로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주사 한대당 1천만원에 달한다" 며 "누에똥에서 포르피린을 대량생산하는 기술개발에 성공한다면 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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