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행정력 실종된 아마야구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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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일본은 없다. "

지난해 9월 한국 야구가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따냈을 때 각 신문의 지면을 일제히 장식한 제목이다. 완투승을 거둔 구대성(당시 한화.32)은 '일본 킬러' 라는 별명을 공인받았고, 상대 선발이었던 일본의 영웅 마쓰자카(세이부 라이언스)는 순식간에 괴물에서 애송이로 전락했다.

그러나 불과 1년이 채 안된 지금 한국 야구는 일본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야구 후진국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무소신.무능력.무대책의 아마야구협회 얘기다.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은 지난 4일 막을 내린 제4회 아시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두번 내리 졌다. 주최국 대만에도 졌고 만만하게 여겼던 호주에도 지는 망신을 당했다. 한국 청소년야구는 꼭 1년 전 아시아가 아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던 디펜딩 월드챔피언이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초고교급 투수 김진우(진흥고)를 앞세운 올해 대표팀은 지난해 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멤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이유는 올해 새 집행부 출범 뒤 보신주의와 대충주의가 판을 치게 된 국내 아마야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대한야구협회의 행정력은 '공황' 이라고 보면 된다.

현직 감독과 학부모를 불러 골프를 치다가 징계받은 심판이 불과 5개월 뒤 전국대회 본선에서 당당히 마스크를 쓰는가 하면 입시 비리에 연루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협회 임원은 은근슬쩍 업무에 복귀했다.

"올해 상반기 내에 회장을 영입하고 반드시 심판부를 정화하겠다" 던 고익동 회장직무대행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그런데도 협회의 중심인 대의원총회는 직무대행의 무능을 견제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고질화한 비리에 기생하는 한통속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11월 6일부터 대만에서 열리는 제34회 야구월드컵은 야구 강국 쿠바.미국.일본은 물론 도미니카.니카라과 등 중남미 강호까지 세계 16개국이 참가한다. 야구로만 보면 올림픽보다 더 큰 대회다. 일본은 지난 6일 이 대회에 파견할 프로선수 14명 가운데 13명을 확정했다.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1위 다카하시(요미우리)와 다승1위 후지이(야쿠르트) 등이 포함된 쟁쟁한 멤버다.

일본이 '25세 이하의 프로 입단 3년차 이내 12명과 베테랑 2명' 의 기준을 일찌감치 정해 선수 선발을 끝낸 반면 한국은 '프로선수가 참가한다' 는 원칙만 세웠을 뿐 몇명인지, 어떤 선수를 선발할 것인지 아직 논의조차 없다.

지난해 이맘 때의 한국야구 자존심을 찾으려면 아마야구협회의 행정력을 되살려야 한다. 전문경영인들이 매달려 있는 일본을 따라가려면 야구협회의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히틀러처럼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을 갖고 있든가 솔로몬 같은 현명한 지혜를 갖춘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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